[3호] 전주 최고의 야경이 있는 신들의 공간은 어디일까요?
견훤과 동고산성
천년 전주의 주인공 견훤은 전주를 한 국가의 성도로 삼았으며 전주에 성을 쌓아 성도 수비를 견고하게 하여 전주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다. 견훤이 쌓은 전주 사방의 동고산성, 남고산성 그리고 서고산성에 모두 굳을 고(固)가 있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동고산성은 1980년 이래 2015년 현재까지 9차례 발굴 조사가 있었으며 1980년 첫 발굴조사에서 전주성 명연화문 와당(全州城 銘蓮花文 瓦當)이 신라 말 고려 초엽의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 성이 견훤이 쌓은 성임이 입증되었다.
이규보와 성황제
성황제는 신라 말, 고려 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민간, 종교와 주술, 미신과 예술 사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한국 대표 민간신앙이자 기층문화이다. 특히 전주 성황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황제의 하나이며, 1199년(신종 2년) 전주목의 지방관(司錄 겸 掌書記)으로 전주에 내려온 이규보가 지은 제문에 당시의 정황이 상세하게 남아있다. 이 제문에는 아전들이 관행을 핑계 삼아 매달 초 백성들에게 사슴, 토끼 따위를 잡아오게 하여 성황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꾸짖고 간소하게 제를 올리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완산 성황 계국백(啓國伯)
조선왕조실록 태조 2년(1393년) 1월 21일 기사에 전국의 명산대천과 성황해도(城隍海島)의 신에 봉작을 내리는 자리에서 완산의 성황은 회령, 안변의 성황과 더불어 계국백으로 봉작된다. 계국백은 나라를 여는 데 공헌한 이에 내리는 봉작으로 전주의 성황신이 조선왕조 창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유항검 가족의 순교와 치명자산
유항검(1756-1801)과 그 아들 유중철, 유문석, 조카 유중성 그리고 동정부부 유중철, 이순이는 조선 정부의 천주교 박해 때 가장 먼저 체포되어 남문 앞 초록바위와 숲정이 등지에서 순교된 이들이다. 온 가족이 처형을 당했으니 말 그대로 집안이 소(沼)가 되어 풍비박산이 된 셈이다. 그러나 그들이 끝내 주검으로 지켜낸 종교적 신념은 영원히 빛나는 총총한 별이 되어 전주의 밤하늘을 지키고 있다.
<참고>
<이규보의 祭神文>
삼가 채소, 과일, 맑은 술을 제수로 해서 성황대왕 영전에 제사지냅니다. 내가 이 고을에 부임하여 나물 끼니도 제대로 못했는데 어떤 사냥꾼이 사슴 한 마리를 잡아와 바치기에 내가 그 연유를 물으니 '이 고을에는 매월 초하루에 사슴 한 마리와 꿩 또는 토끼를 제사 고기로 썼고 그 뒤 아리(衙吏)들이 주찬을 갖춰 성황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관례이었습니다.' 하기에 내가 노하여 매질하여 꾸짖고, (중략) 아리들을 훈계하여 다시는 고기를 쓰지 않기로 하고 채소, 과일과 주찬 따위의 진설은 알아서 하게끔 하였습니다. 제왕은 내가 옛 관례를 따르지 않는 것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이규보,「동국이상국」 권37, 애사, 제문 편집)
그림 1) '전주성' 명수막새
그림 2) '전주성' 명암막새
그림 3) 1872년 지방지도에 그려진 성황사의 위치(전주부성 동문에서 성황사까지 이어지는 길이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