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6-04-22 15:04:07 | 조회수 | 2557 |
빛으로 초대하는 남자, 전주 주부평생학교 박영수 교장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속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앞에 무엇이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고 방향감각도 사라질 겁니다. 또 부딪히는 모든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겠지요.
그런데 밝은 빛 아래서도 이런 어둠 속처럼 살아가야 하는 분들이있습니다. 바로 글을 읽고 쓰기 어려운 비문해인들입니다. 이런 비문해인들을 빛으로 초대하는 분이 있습니다. 야학부터 문해교육까지 30년동안 학습에 목마른분들과 함께한 오늘의 주인공 박영수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빛으로 초대하는 남자가 된 사연 – 문해교육의 시작
금암동에 있는 작은 배움터 ‘주부평생학교. 소박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수많은 학생들이 교육열을 불태우는 곳입니다. 이곳의 박영수 교장선생님은 원래 야학에서 출발해 86년부터 지금까지 주부평생학교를 끌어왔습니다. 배움에 목마른 이들과 함께 청춘을 다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 교실대신 일터를 찾아야 했던 이들의 친구로 오랜 시간 살아온 그에게도 문해교육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90년대에 전북 최초로 주부대학을 진행할 때 일이었습니다. 한 교수님이 수강생들에게 시쓰기 과제를 내주셨는데 수업이 끝나고 한 분이 쭈뼛쭈뼛 오시더니 한참을 서성이시더라구요. 무슨일인지 여쭤보니 본인이 한글을 몰라 과제를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깜짝놀라 그 분에게 한글을 알려드리고 나니 혹시 이런 분들이 또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래서 한글 문해반을 열었는데 정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습니다. 충격적이었지요.”
정말 놀라울 만큼 생각보다 비문해인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단기에 그치지 않고 한글문해반(기초학습반)을 개설하여 한글교육 및 기초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드러나지 않기에 더 필요한 도움 – 성인 문해교육
그런데 문해교육에 앉을자리가 없을정도로 많은 학생이 왔다는 말에 사실 의아해지기도 했습니다. 실제 제 주변에서 문해교육이 필요한 분들이 못본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글읽기는 대부분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궁금증은 더해졌습니다.
“주변에선 아직까지 문해교육이 필요한 분들은 못뵈었는데 아직도 문해학습이 필요한 분들이 많이 계신가요?”
“다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더 못 드러내는게 현재 비문해자의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사실 미국을 포함해서 선진국들도 비문해인이 분명 있는데 말이죠.
더불어 의외로 나이가 많지 않은 분들도 비문해인인 경우가 상당합니다. 산골 오지에 살거나 연세가 아주많아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분이 받는 교육이라고 여기면 오산입니다. 의무교육이 실시되었어도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서 제도권 교육에서 멀어지신 분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꼭 문해교육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지요.”
실제 2008년 국립국어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예 글자를 읽고 쓸 수 없는 사람은 이 가운데 읽고 쓰는 능력이 전혀 없는 비문해자가 성인인구의 62만명(1.7%)나 된다고 하니 박영수 교장의 문해교육에 대한 강조에 더욱 공감이 갑니다.
문해교육부터 중등교육까지 – 글자공부를 넘어
실제 문해수업 시간을 살짝 엿보니 학생들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선생님의 판서하나 강조점 하나 놓칠새라 손은 정신없이 필기 중이었고 입으로는 몇 번이고 글자와 발음을 맞추어 봅니다. 옆반에서는 기초 영어 수업도 한창이었는데요, 이곳 주부평생학교에서는 기초학습반을 통해 문해교육 뿐 아니라 초등학력에 해당하는 교육들을 함께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단순 한글 공부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문해인들은 사실 자기주도의 삶을 살기 참 어렵습니다. 버스를 타는 것부터 은행 볼일까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하지요. 우리는 이분들의 성장을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글자독해를 넘어 기초교육이 꼭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초등 수준의 학습과정을 꼭 병행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또 그렇게야 해야 더 배우고 싶으신 분들은 중등학습까지 연계해서 배움을 이어나갈 수도 있지요. 특히 우리 전주주부평생학교는 학력인증기관이기 때문에 3년을 수료할 경우 실제 초등학력으로 인정됩니다.”
정식 학력인증으로 비문해인에게 자신감을
주부평생학교에만 다녀도 실제 학력으로 인정된다니 신기하지요? 이는 학력인증제 덕분입니다. 학력인증제란 교육청이 지정한 기관에서 일정과정을 이수할 경우 정식 학력으로 인정하는 시스템입니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는 교육의 문턱을 굉장히 낮추어 주는 좋은 제도입니다. 좋은 취지이지만 실시하는 국가가 많지 않을 정도로 혁신적이기도 하지요. 전라북도 교육청은 학력인증 단계를 크게 3단계로 나누어 인증하고 있으며 전주에서는 전주주부평생학교가 유일한 인증기관입니다.
필요한 자리에 놓인 사람으로 살기
정식학력을 주는 기관임에도 수강 금액은 한달에 3만원. 그나마도 초기에는 받지 않다가 학생도 교사도 서로가 미안하거나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학습자에 대한 박영수 교장선생님만의 배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배려를 하며 야학부터 30년동안 교육에만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힘든점은 없었는지 물었습니다.
“글쎄요,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크게 없습니다. 물론 학교가 독립된 공간 없이 세를 주고 지내다 보니 급히 비워줘야 할때도 있고 비영리로 운영하며 어려움은 종종 생기기 마련이죠. 그래도 힘들다기 보다는 당연한 사명처럼 일해왔습니다. 물건도 필요한 곳에 있어야 가치가 있듯이 제 자신도 저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거의 휴일없이 일하다보니 우리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추억거리 한번 못 만들어 준 것 같아 마음에 걸립니다. 그러나 가족들도 다 이해해 줘서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교육공동체로 성장시키고파
30년을 한결같이 교육나눔의 꿈을 꾸며 살아온 박영수 교장선생님. 앞으로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우리 주부평생학교 문해반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 중등과정을 거치고 실제 대학까지 진학하게 된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실력이 쌓여 방과후 학교 등에서 배움을 나누게 까지 되었지요. 그분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성장과 배움에 대한 갈망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참 보람되었습니다.
제 꿈은 이곳이 앞으로도 교육공동체로 단단하게 성장해서 더 많은 분들이 학습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만드는 겁니다. 실제 지금은 중등과정 외에도 학습계좌제로 이용가능한 평생학습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초등과정 외에도 중등, 영어, 한문, 중국어 등 배우고 싶어도 문턱이 높아 망설이는 분들이 와서 서로를 보듬어 주고 학습으로 자신감도 얻어갔으면 합니다. 그게 제가 계속 기초학습에 주력하는 까닭이기도 하고요. 전주시민을 비롯해서 어떤 분이라도 배움을 구할 수 있는 교육공동체, 배우고 또 그 배움을 나눌 수 있는 교육공동체가 저의 지속되는 바람입니다.”
어둠이 사라지는 날까지
학생때부터 좋아하던 가수의 노래가사 중에 이런 소절이 있습니다.
작은 촛불 하나 켜보면
달라지는게 너무나도 많아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엔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 개가 되고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내내 저 노래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가사 속 촛불하나처럼 박교장선생님은 어둠속에 있는 비문해인에게 불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고 계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이라는 빛을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배움을 나누고 모두가 밝은 곳에 있게 되겠지요.
꿈을 묻는 질문조차 개인의 직위나 목표가 아니라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이 배움을 나누어 가길 소망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렇게 헌신적으로 남을 위해 애썼던 순간이 언제인가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모쪼록 앞으로도 오래오래 선생님의 초가 밝혀져 있길 바라봅니다.
글·사진/박보람(시민학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