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20-06-29 09:44:13 | 조회수 | 1052 |
작년인 2019년부터 전주시평생학습관은 50+를 대상으로 섬진강 종주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섬진강댐부터 배알도수변공원까지 154Km의 섬진강 종주길을 총 8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걷는 이번 프로그램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는 50+세대들을 위해 장기적인 접근으로 마련되었다. 혼자서는 쉽게 시작하기도, 이루어 내기도 어려운 ‘종주’라는 과제를 함께 그리고 같이 수행하며 자신의 삶 속 변화에서도 혼자 맞이하기 보다는 비슷한 생각과 경험을 가진 이들과 함께 맞이하는 방법을 체득하기 바라는 기획의도가 담겨져 있다. 작년까지 1~4구간을 운영하고, 올해에는 5~8구간을 진행할 예정으로 변화하는 계절과 풍경 속에서 참여자들은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하고, 나아가 함께 걷고 있는 자신과 비슷한 타인과 생각을 나누며 섬진강 종주길을 나아가고, 삶의 전환기를 걷고 있다.
참가자 수기
길에서 만나 길에서 정들어 가는 사람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섬진강 줄기를 따라 걸으며 이 시가 찾아들었다. 사람과 길, 길에 들어서는 사람, 사람에게 들어앉는 길,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스하게 맺어주는 길! 그 길이 있어 우리는 오늘도 걸어본다.
드디어 그날이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며 가슴 졸였던 시간들인가? 코로나 19가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여 그 소박한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던 날들의 숨통 트일 한줄기 희망, 그것은 섬진강 종주의 완성이었다. 지난 11월 23일, 섬진강 종주프로젝트 8구간 중 4구간을 마치고서 동면같은 시간을 훌쩍 흘려보내고 장장 7개월만의 걸음이다.
2020년 6월 13일 토요일!
지난해 횡탄정에 잠시 멈춰뒀던 걸음을 다시 연결할 수 있었다. 6월 들어 성급하게 찾아든 더위로 인해 걷는 길이 더디고 지칠까 걱정되었는데, 많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어렵게 얻은 기회가 폭우로 취소될까 조바심도 났다. 우의와 도시락, 물, 여벌의 옷, 우산, 모자 그리고 필수품인 마스크를 전날부터 챙겨놓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었다.
섬진강 인연으로 돈독해진 김귀수샘과 만나 45분쯤 도착한 시청민원실 앞에는 두 대의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 대로 진행되던 것이 거리두기로 인해 두 대로 늘어난 것이다.
다들 오랜만의 만남인데도 손 한번 내밀지 못하고 눈빛으로만 서로 인사를 나누는 안타까움이었지만, 이미 눈빛에 반가움이 그득하다. 부지런한 분들이 이미 버스 안을 채웠고 한 좌석만 앉아야 하는 탓에 처음 홀로 참여했을 때의 긴장감이 다시 찾아드는 것 같았다. 오늘은 14km라는 비교적 짧은 구간을 걷게 된다고 한다. 제일 오래 걸었을 때가 28km 정도 되었는데 그에 비하면 절반인 셈이니 쉽게 끝낼 자신이 있었다.
안내사항과 함께 출발하여 지난번 맺음 했던 곳까지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창으로 지나는 아침풍경들이, 산허리로 오르는 구름들이 눈을 뗄 수 없다. 얼마나 지났을까? 낯익은 공간이 들어온다. 늦가을 무렵 낙엽 속에서 누워봤던 곳, 자유롭게 햇살 받으며 마무리했던 곳, 횡탄정이다. 계절이 두 번이나 변했지만 그곳에 남긴 마지막 발자국이 선명하게 기억되었다.
이제 출발이다. 얼마나 간절했던가? 평범한 것들이 더 이상 평범하지가 않아진 시간을 겪어야 했던 우리에게 이 걸음 하나하나는 희망이고 용기고 열정이었다.
살짝 내리는 빗방울이었지만, 혹시 도중에 만나게 될지도 모를 폭우를 대비하여 우의를 입고 우산을 들고 한 줄로 서서 거리를 두고 출발하였다. 섬진강 물빛은 계절을 닮아 야무지고 또렷해져 청춘을 맞은 젊은이의 목소리로 흐르고 있었다. 앙상하던 벚나무 가지도 검붉은 열매의 풍성함으로 맞이한다. 아낌없이 들려주고 아낌없이 내어주는 이 곳은 우리가 그렸던 섬진강이다.
비가 서서히 물러가는 길에 펼쳐지는 안개가 장관이다. 멈춰선 걸음이 눈빛에 휴대폰에 그리고 마음에 그 풍경을 담는다. 여름꽃들이 노랗게 핀 곳을 지나며, 지난해 노란 금계국의 이름을 물었던 정희샘은 다시 그 이름을 묻는다. 까먹었다고 말하는 소녀같은 농담이 우리 곁에 웃음꽃을 피웠다.
고사리밭을 지나고 매실밭을 지나고, 벼 포기 야물어지는 논 곁을 지나고, 김매는 할머니의 땀방울 곁을 지나며 모든 풍경이 이야기가 되고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
매화꽃으로 유명한 섬진강변이기에 곳곳에 매실나무가 많았는데, 이 곳 매실은 어느 지역보다 탐스럽게 느껴졌다. 남쪽이라는 이유만은 아닐 것 같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풍경에 도취되어 싸드락싸드락 얼마쯤 걸었을까? 앞서 걷는 우리의 뒤가 보이지 않는다. 몸통과 꼬리를 잘라놓고 온 것이다. 기다립시다.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등줄기를 지나는 바람을 맞으며 기다림의 미학을 발휘한다. 이쯤의 시간이야 이미 우리에겐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는 듯, 멀리 가기 위해선 함께 가라는 말을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
물줄기와 물줄기가 만나 강을 이뤄 흐르듯, 우리도 합류하여 점심을 먹기로 한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아무데서나 자유롭게 점심을 먹기로 했지만, 많은 사람이 오가는 역의 특성상 무턱대고 도시락을 펼칠 수는 없었다. 음식점 즐비한 곳에서 점심을 먹으려는 것도, 바닥을 털썩 앉을 배짱도 없어 쭈뼛거리니, 상인 한 분이 나와서 비에 젖은 의자와 테이블을 닦아주며 앉아서 먹으라 권하기도 하였다. 그 마음씀씀이가 고와서 가슴에 구례꽃이 피었다.
몇몇은 역 앞에서, 몇몇은 구례구역에서 배려해준 덕에 역사 안 한쪽에 자리를 펴고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각자 준비해온 김밥, 주먹밥, 찰밥, 그리고 간식들로 서로서로 옆사람을 챙기는 모습은 몇 시간의 인연으로 깊어졌다고 말하기는 너무도 속이 깊다. 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을 이야기했던가?
휴식의 시간까지 여유롭게 마치고 우리의 오늘 목적지인 사성암 주차장을 향하여 느슨해진 발걸음을 일으켰다. 그동안 걸었던 거리에 비하면 여유롭게 걸어도 될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라 가는 도중에 벚나무 가지를 기울여 열매를 따먹기도 하는 개구쟁이 행동도 해본다. 까매진 손가락, 까매진 입속이 또 웃음을 만들고.......
모퉁이를 돌아서 조금 전 지나온 길을 건너편에 두고 걷노라니, 우리 삶의 길도 가끔은 지나온 길들이 저렇게 보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어진 벚나무 길이 시원한 강바람과 만나 절로 ‘행복하다, 좋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걷다보니, 와~ 어느새 우리의 목적지 사성암 주차장이다.
네 명의 스님이 수도를 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의 사성암은, 오늘은 비록 오르지 못하지만 그 곳에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절경이라고 꼭 한 번 가보라는 백승호 대장님의 말씀에 욕심이 생긴다.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그곳을 들렀다 가자고 건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 시국에 5구간 계획을 실행하느라 정말 마음 졸였을 분들을 알기에 쉽사리 내뱉을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오늘도 안전하게 그리고 뿌듯하게, 감사하게 마치고, 섬진강 곁에 서서 사성암을 머리 위에 두고 다음에 있을 6구간 남도대교를 꿈꾸어 본다.
남도대교, 너 기다리고 있지? 우리의 길이 되고 싶은 마음~
다음 구간을 진행하는 7월의 더위도 우리의 열정보다 뜨거울 수 없으리라 자신하며, 김지영 선생님, 백승호 대장님, 그리고 그 외 전주시 평생학습관의 여러 선생님들의 사전답사와 세심한 배려가 같이 해서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길이었다.
길에서 만나, 길에서 정들어가는 사람들, 내 삶의 길은 그대들입니다.
글 : 이지영(50+어른학교 섬진강 종주 프로젝트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