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8-10-23 15:32:19 | 조회수 | 1630 |
- 육체와 정신을 아우르며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의 집합, 전주시 인문학 강좌와 함께하다 -
인터넷이 등장한 이래로 우리들은 세계의 다양한 소식들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그 소식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인터넷에 올리고 실시간으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정보의 홍수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낙관적인 기대와 달리, 그 정보를 자신의 생각을 고착화시키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만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고착화된 생각들은 분명하게 이분법으로 나뉘고 있다.
다양한 생각들이 교차되어야 할 사회는 경직되어 바른 길과 틀린 길 이외에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우리들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전주시에서는 인문학적 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에게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안내하고 있다. 그 중 세 가지의 인문학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전주시에서는 '시민인문세미나'라는 이름으로, 한 주제에 대한 책을 강사와 함께 읽고 토론하며 글을 쓰는 모임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는 모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 권의 책은, 특히 사상가들의 책은 작가의 인생을 강렬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그 책을 깊이 있게 읽어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를 알아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 출신의 유대인 정치이론가이다. 그는 나치가 유대인을 억압·배제하는 것을 겪었으며,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문명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분명 문명은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었다. 세계가 더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는 것을 목격한 순간, 그 원인이 무엇인지 탐구했다.
한나 아렌트는 보편적인 척도와 기준을 정하는 것에 비판적이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의 민주주의를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의견을 공공의 장에서 표출한다는 점에서였다. 세력을 지닌 한 사람의 의견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공공의 문제에 참여한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보편적인 척도와 기준은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묵살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또한 나치가 그토록 지지를 얻은 이유는 사람들이 사고를 방기해서라고 보았다. 자신의 의견을 가지지 않고 단순히 행동했기 때문에 나치는 힘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 사람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유하는 것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유하지 않고 행동하기만 한다면 과거의 악습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인간의 조건"에서는 인간이기 위한 조건 중 육체적인 조건을 다루고 있다. 그는 이를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활동인 노동, 자연과는 달리 인간이 만드는 인공적인 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작업, 인간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활동하는 행위이다.
이 책에서는 위의 조건들을 토대로, 그녀의 사상적 실마리인 근본악이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가를 살피고 있다. 우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듣고 행동하는 것들이 왜 위험한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인문 공간 파사주에서 발제자인 성기석 대표와 함께 매주 화요일, 다 같이 읽고 이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가을을 맞이해 라키비움 책마루에서 가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 "책:쓰기"라는 프로그램은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여 관련 책을 읽고 논의하며 그에 대한 생각을 갈무리해 쓰는 과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번이 첫 번째 프로그램이며, 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를 이선 전북대학교 학술 교수와 함께 읽으며 진행한다.
벨 훅스는 이전의 백인 여성이 주류였던 페미니즘을 주변부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페미니즘의 영역을 확대한 페미니스트이다. 시야를 성차별과 억압의 관점에서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의 문제로 확대한 것이다.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 또한 그들이 받아온 억압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환경의 차이는 있어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연대하게 되었다.
이해와 존중과 연대는 한 감정의 일부를 이루는 토대라고 본다. 그 감정은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 진실로 사랑을 하고 받으려면 사랑이 무엇인지 적확하게 정의해야 한다고 벨 훅스는 "올 어바웃 러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이제까지 얘기해왔던 다양한 종류의 사랑들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야말로 사회의 근간인 사람들 사이의 관계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건강한 정신으로 이루어지는 진실한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벨 훅스는 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마지막 강의 시간을 글쓰기로 마무리한다. 벨 훅스가 정의한 사랑에 대해 수강생들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전주시에서는 '인문학 향기 넘치는 전주'라는 큰 타이틀에서, 다시 '인간의 조건'이라는 주제로 대중강연을 진행하였다. 그 중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 라는 주제의 강연을 소개한다. 10월 18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린 이 강연은 '내'가 생각했다고 하는 내용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나의 생각이 되었는지, 그것은 '내'가 주체인 생각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했다.
그는 인간의 조건이 사유에 있으며 그것은 질문에 의해 형성된다고 말한다. 그는 성숙한 시민이 성숙한 정부를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성숙한 시민은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을 가진다. 민주정치에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참여하며,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주체성을 확립한다. 늘 비판적인 안목으로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 공적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입장이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숙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경로로 나에게 왔는가? 내가 보고 겪고 판단하고 결정한 내용인가?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이런 방식으로 인문학적인 견지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드물다고 강연자는 말한다.
자신의 의견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다른 고유성이 존재해야 한다. 이 고유성은 그 사람의 환경, 세계관, 정치관, 윤리관 등등에 의해 좌우된다. 이런 고유성이 과연 진정으로 자신의 의문에서 출발하여 형성된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자신이 생각하지 않은 것들을 흡수하며 생각하지 않고 믿고 있다.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사유의 경로를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이 수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도 눈을 감는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연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면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유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게 질문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타자의 의견을 듣게 된다. 타인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연대의 가능성을 보인다.
보다 성숙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자신의 주체성을 세우고, 공익을 위해서 사유세계가 다른 타인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지 질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제까지 전주시에서 이루어지는 세 가지 인문학 프로그램을 다루어 보았다.
우리 사회가 기형적으로 자라난 것은 인문학적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무시하고 쉬운 수단인 주입식 암기 교육환경을 선택했다. 질문은 기본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숙해질 수 있겠는가? 갑질 등의 행태는 인간의 가치를 무시한 행위이다. 이는 미성숙한 행위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설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고유한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독서와 토론은 자신의 세계를 지지하는 기반을 형성하고 세계에 대해 쉬지 않고 분석하고 정리하고 종합하는 힘을 기르게 하는 수단이다. 이는 매스미디어의 정보를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에 비해서 당연히 어렵다.
우리는 변화하는 사회에 흔들리면서도 자아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어떻게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독서도 글쓰기도 혼자서 시작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은 어떨까? 처음 시작은 어렵게 느껴져도 참여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다가, 점차 자신의 의견을 내기 시작할 때 당신은 사유의 첫발을 딛기 시작한다.
글ㆍ사진/김효선(시민학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