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7-03-23 16:31:07 | 조회수 | 2178 |
가끔 거대한 붓을 이용한 퍼포먼스를 볼 수 있는데요. 큰 붓에서 힘차게 쓰인 글씨가 참으로 강하고 담대해 보입니다. 그렇게 쓰인 글씨에 한번 눈길이 가고, 거대한 붓에 한 번 더 눈길이 가는데요. 정작 누가 그 붓을 만들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는 교동아트미술관에서 그 붓을 만든 필장(筆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통을 계승한 붓의 힘
덕인 곽종민 필장은 50여 년 동안 붓을 연구하는 데 매진했다고 합니다.
덕인의 붓 인생은 그의 부친께서 붓을 만드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며 습득함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필장인 부친의 곁에서 직접 보고 배우며 붓을 익혔을 덕인의 유년시절을 되돌아보니, 세대 간에 배움이 전승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붓과 함께 한 덕인은, 부친에게 배운 가르침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욕심이 든다 합니다. 덕인은 붓 학교를 세워서 이러한 가르침이 끝나지 않기를, 그리고 더 많은 후배를 양성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더욱 더 더 많은 젊은이들이 붓에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전통을 계승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말하며 웃는 덕인의 모습에서 전통을 이어나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입니다.
덕인은 우리의 붓이 대가 끊이지 않고 계승될 수 있도록 후배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붓을 만드는 기술이 꾸준히 발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 덕인은 좋은 모(毛)를 찾아 산천을 누빕니다. 붓에 쓸 좋은 모를 고르기 위해 전국, 그리고 바다 건너까지 누비고 있는 덕인이 자주 찾는 곳은 중국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환경오염이 심각해서 좋지 않은 풀을 먹고 자란 짐승의 모가 윤기도 나지 않고 고르지 않아 붓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오염이 덜 된 중국의 시골 지방을 누비며 붓에 쓸 모를 고릅니다.
손이 한 번이라도 더 간 게 맛있는 것은 우주의 진리인 만큼, 붓도 한 번이라도 손이 더 간 게 좋은 붓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덕인이 고르고 고른 좋은 모는 좋은 붓으로 탄생하기 위해 120여 번의 작업을 견딥니다. 손질을 많이 할수록 붓의 성질이 좋아진다고 하는데요. 모가 먹물을 잘 먹게 하려고 기름을 빼내고, 속모와 겉 모를 뭉치는 등 세세한 작업을 거쳐 붓으로 태어납니다.
쓰임이 있을 때 더욱 아름다운 붓
필장은 좋은 모를 고르고 그것에 맞게 붓을 만들뿐만 아니라, 필관을 예쁘게 만들고 장식하고 그 붓에 어울릴 붓걸이를 만드는 등 여러 방면에서 능합니다. 옻칠하고, 문양을 넣고, 예쁜 색을 입히고, 공예를 하는 등 다양한 부분에서 지속해서 연구하고 발전해 나갑니다.
그래서 덕인은 예전 전통 방식만으로는 만들지 않습니다. 더욱 좋은 붓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연구하기도 하고, 옛 방식과 현대의 방식 중 장점만을 따오고 있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겉 모와 속 모를 묶는 과정을 말할 수 있겠는데요. 옛 방식 그대로 하자면 밀을 지짐으로써 모를 묶는 것이 있지만, 현대의 방식으로는 끈으로 묶는 것이 있는데요. 현대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더욱 붓을 묶어주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전통 역시 중요하지만,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지요.
붓의 가장 큰 매력은 어디에서 올까요? 라는 질문에, 덕인은 “붓은 장식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 쓰임이 있을 때 가장 매력이 있습니다.”고 답합니다. 전시장에 전시된 붓을 보는 것으로도 아주 아름답고 매력이 있는데, 그보다 더한 매력이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게다가 좋은 것일수록 장식해두고 보는 것으로만 만족하는 습관이 있는 저에게는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요.
“붓에는 각각의 묘미가 있습니다. 양모(羊毛), 구모(狗毛), 인조모(人造毛) 등 제각각의 모(毛)를 사용해서 만든 붓은 저마다 글씨의 느낌이 다르거든요. 이렇게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붓은 써봐야 압니다. 각각 느낌이 다르므로 써봐야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지요.”라는 덕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러면서 뭐든 써보고 갈고 닦아야 빛을 발할 수 있겠구나 하는 가르침까지 얻습니다.
글ㆍ사진/양새롬(전주시평생학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