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7-05-24 11:06:03 | 조회수 | 1717 |
초록의 기운이 가득 느껴지는 삼례 책 마을. 싱그러운 느낌의 잔디와 나무가 책 읽기에 좋도록 우리의 시야를 안정시켜 주는 듯합니다.
북 하우스 입구에는 어린왕자가 우릴 반기는데요. 종이 한 장을 건네며 '양'을 그려달라고 말할 것 같기도 하고, 사막여우와 '길들임'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북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면 책들이 가득 꽂힌 웅장한 책꽂이가 우리를 반기는데요.
한 편에 있는 작지만 아늑한 공간에서 '그림책 포럼'이 진행되었습니다.
알록달록한, 그리고 다채로운 주제의 그림책이 포럼에 참가한 이들을 반기기 위해 활짝 펼쳐져 있었습니다.
다소 몽환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세련된 느낌도 받을 수 있어서 어렸을 때 읽었던 그림책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훈과 교육으로 초점이 맞춰져 전래동화와 같은 유형의 그림책을 주로 읽었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서 다양한 스타일의 그림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림책 포럼'의 방문객은 다양했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손을 잡고 오기도 하고, 성인 혼자 방문한 이도 있었습니다. 손자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길 좋아하는 듯한 노년의 방문객도 함께했는데요. 이렇게 전 연령층이 참가한 것을 보니, 그림책이 0세에서 100세까지 함께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시작하는 이를 위한 그림책
그림책의 교육적·예술적 가치와 역사, 세계를 전하며 그림책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은 평론가가 함께했습니다. 김 평론가는 '그림책은 그림도 아니고 책도 아닌, 그림과 글, 그것에 무엇인가가 더해져 만들어진 다른 종류의 예술'이라고 역설합니다. 책도 그림도 아닌, 글과 그림이 협력하여 만든 '다른 장르'의 이 예술은 평온하면서도 많은 것이 들어 있는 세계라 하는데요. 함축적인 이 세계는 얇고, 그리고 가벼우므로 한 권을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준비하는 책'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그림책은 다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워밍업'을 하는 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김 평론가는 한 학생의 예를 들었는데요.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던 한 학생은 중학생이 되어서는 책을 잘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그림책을 읽고 본인의 책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가지게 되었다고 해요. 다시 책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좋은 양분을 주는 것이 그림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를 위한 그림책
김 평론가는 그림책이 감수성과 기억을 확장하는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돕고, 여러 가지 감각을 확장하는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하는데요. 여러 명의 초점 화자가 동시에 등장함으로써 다양한 초점을 이해하고 독자들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림책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이 있는 책으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그림책을 읽는 독자 중 어른 독자를 찾아볼 수 있는 명확한 이유가 되는 것이겠지요.
저 역시 (자주는 아니지만) 그림책을 읽는 성인 독자 중 한 명인데요. 그림책을 읽으며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에 자신을 대입해보기도 하고, 과거의 자신을 대입해보기도 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 생각은 자아 성찰이 되기도 하고, 희망적인 꿈을 꾸는 나비가 되기도 해요. 알록달록한 빛깔이 되기도 하면서 무채색의 짙은 감정이 되기도 하는, 그림책.
예술 장르로서 그림책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고,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그림책은 김 평론가가 앞서 역설했듯 '예술 장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 평론가는 그림책은 입체적인 책으로, 글과 그림과 주변 텍스트를 활용하는 하나의 예술이라고 말하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주변 텍스트는 다양한 재질과 소재를 가진 것들을 뜻합니다. 이를테면 나무가 등장하는 그림책에 사용된 나무 질감의 재료나, 그림책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알록달록한 천과 같은 표지와 면지, 판형, 재질을 이루는 다양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텍스트를 사용하는 점에서 하나의 예술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작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예술적 장르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데요. 작가 자신의 감수성을 포기하고 교육적이고 교훈을 주는 목적으로 만드는 그림책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그림책 작가가 본인의 작품에 드러낸다는 것이지요. 이는 그림책이 예술 장르로서 위치를 확보하는 지점이 되기도 합니다.
왠지 더 신경 쓰이는 그림책
우리나라 그림책 초석을 놓으신 분으로 권정생 작가의 동화 '강아지 똥'을 그림책으로 만들어낸 정승각 작가도 함께했습니다. 비 맞은 강아지 똥을 그리기 위해 직접 비를 맞기도 했다는 정 작가는 그림책 작가가 되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이 '(물론 어른들도 보지만) 주로 아이들이 본다'라는 것이었다 합니다. 아이들이 본다는 것이 왜 걱정될까요? 그림책은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린아이들이 보기 때문에 어렵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껴안기도 하고, 보고 싶은 그림을 그림책 안에서 펼쳐보기도 하고, 그림을 마구 만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좋아하고,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때문에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심사숙고하여 만들어지는 그림책.
정 작가는 '어릴 때부터 몸으로 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 깨친다 하더라도 바로 바뀌지 않는다.'라며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을 때 그림만 볼 뿐만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져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그림책, 어떻게 읽어야 좋을까?
그림책 포럼에 참가한 이들은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주어야 하며 어떤 그림책을 함께 읽는 것이 좋을까?'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포럼의 열띤 분위기 속에서 많은 질문이 오갔지만, 지면에는 짧게 두 가지 정도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하는 그림에 집중하기
아이 셋의 엄마로 첫 번째 질문을 한 분은 '그림책을 표지부터 차례차례 읽어주고 싶으나, 어느 순간 보니 글자 위주로 읽어주고 있었다'라며 '어떤 방법으로 그림책을 읽어줘야 아이에게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김 평론가는 '글자는 목걸이의 줄 같은 것이며, 구슬은 그림과 같은 것이다'라며 '우리는 줄(글자)에 관한 강박감이 있으므로 이 글을 꼭 읽어줘야 하고 이 글자를 읽어야 책을 읽었다는 편견이 있다. 구슬 사이로 살짝살짝 줄이 보이듯이 글자를 모두 읽을 생각을 버리며 그림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책을 전부 읽었다는 편견을 버리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습니다. 아이들은 보고 싶은 그림 하나에 집중하기도 하고, 그림책 표지 하나만을 보고 행복해하기도 합니다. 책을 모두 읽어주려고 하기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 작가는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가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아이와의 소통을 강조합니다.
치유의 매개체로써 그림책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림책을 읽어주며 '그림책이 상담과 치유의 매체로 가치가 있다'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한 분이 질문해 주었습니다. '그림책 강의를 개설하여 운영 중인데, 학생들이 매우 즐겁고 재미있게, 짧지만 많은 이야기를 느끼고 공감하고 좋아해 준다'며 대학생의 고민을 닮은 그림책을 추천받고자 했습니다.
김 평론가는 '대학생들이 공감의 방식을 배우지 못하고 내몰리기만 하여서 청년이 되어 감정 표현에 어색하다'라며 대학생들과 함께 하는 그림책 수업의 경험을 내비쳤습니다. 한·중·일 세 나라의 그림책 작품을 비교해보며 그림책 역사를 나눠 보는 것을 추천하면서, 요즘의 젊은 작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에 잘 반영하고 있으므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읽어보는 것 역시 도움이 될 것이라 조언합니다.
그림책은 가볍고 읽기 쉬워 손이 많이 갈 수 있으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함께 얘기할 수 있으므로 더욱 치유의 매개체로서 역할을 다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요함과 차분함이 느껴지던 그 책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새벽의 하늘과 푸르른 시간. 해가 뜨면서 빛나는 초록빛의 동산. 어른의 눈으로 바라본 이 그림책은 제게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치유의 힘을 전해주었습니다.
지금 도서관으로, 혹은 서점으로 달려가서 그림책 한 권 펼쳐보시면 어떨까요? 두꺼운 책보다 가벼운 느낌으로 한 권 읽으면서 치유의 바람을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글ㆍ사진/양새롬(전주시평생학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