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6-05-25 10:45:06 | 조회수 | 1318 |
학습독서동아리 활성화 워크숍을 다녀와서
(학습과 자연과 사람 사이)
윤 현 주
매년 3월~5월 사이.
전주시 평생학습관이 주관하는 학습독서동아리 활성화 교육이 진행된다.
단순히 독서동아리를 모집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독서동아리를 길러내고 독서동아리가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독서 길잡이 양성'을 통한 동아리 리더 양성 과정이다.
평소 책 읽기를 즐기거나 독서모임을 꾸리고자 하는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작년부터 참여하게 된 시민으로서 이 프로그램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라고 한다면 '혼자서 하는 독서를 넘어서 사고를 공유하고, 이해와 배려가 살아있는 더 큰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함께 읽기의 즐거움을 통해 생각의 지도를 넓게 펼치고, 사회인으로서의 참여의식을 갖는다.'라 하겠다.
올해는 3월 14일부터 총 5차시에 걸쳐 진행되었다.
전북대 철학과 '이선 교수님'의 "동아리는 관계다"란 주제의 강의를 시작으로 함께 읽기의 즐거움과 독서토론, 경청과 말하기를 통한 진행자의 역할, 책 선정과 질문 그리고 동아리 운영계획 발표와 수료식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으로 수료식을 마친 시민들과 '책과 함께 머물기'란 주제로 1박 2일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이번 워크숍은 자연과 책이 공존하는 공간인 충북 괴산으로의 여행으로 동아리 활성화 과정의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책 읽기를 주제로 하는 모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을 찾으라고 한다며 책 속에서 지식만을 습득하려는 자세라 하겠다. 경쟁적으로 다독을 지향하거나 지적 허영심을 드러내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하여, 진정한 읽기란 바로 책을 벗어나 자연을 읽고, 사람을 읽는 것이라고 강조하고자 한다.
괴산에서 만난 자연과 사람은 환상적이었다.
2002년부터 작은 도서관을 운영해오던 백창화·김병록 부부를 만났다. 유럽의 작은 책방을 둘러보고 행복한 소비의무와 지역사회 문화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이들 부부의 노력이 엿보이는 '숲 속 작은 책방'의 평온함은 어떤 강압도 없이 '책으로 손이 가요 손이 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만난 피노키오 인형들을 구매해 책방을 꾸몄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 책방을 자주 찾던 어느 여학생이 그렸다는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가 책방의 간판을 밝히고 있다.
오후엔 여우 숲 김용규 대표님의 "숲에게 좋은 삶의 길을 묻다"란 주제의 특강이 있었다. 그는 "인간이 가진 각자의 본성을 지키고 지지해 주며 각자의 고유성을 가져야 한다. 사회의 흐름 속에서 왜곡된 거짓된 나를 버려가기 위해 노력하고 진정한 나를 회복하려는 과정이 바로 공부"라고 강조한다.
다음 날 아침, 산막이 옛길 산책과 벽초 홍명희 생가를 둘러보았다.
괴산이란 지명을 들었던 어릴 적 '무슨 귀신이 많이 나타나는 이상한 곳인가'라고 추측했었다.
그래서 산막이 옛길이란 동네명을 들으면서도 '그래, 산으로 둘러싸여서 귀신이 많이 나오나 보네.'란 상상을 했었다. 그러나 지명에 대한 상상은 반전을 불러왔다.
괴산은 느티나무가 많은 산에서 유래되었다. 당산나무로서 느티나무는 악귀를 쫓고 마을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괴산은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대였다. 606년 당시는 괴산의 '가잠성'이 신라의 영역이었다. 당시 '찬덕'이란 자가 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백제가 침입하였다. 성을 지키지 못하자 찬덕이 항복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입구에 있던 큰 느티나무에 머리를 박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태종무열왕이 크게 칭찬하고 의기를 기리면서 느티나무가 이 지역의 상징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무신 배극렴도 관직을 버리고 괴산에 정착하였다. 그러자 태조 이성계가 인재를 얻기 위해 그를 세 번이나 찾아갔다고 하여 '어래산의 삼방리'란 지명도 유래한다.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이며, 기후가 차고 더운 것이 알맞다."란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보면 괴산은 사람 살기에 적당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그 대표적인 곳이 산막이 옛길의 산책로라 할 만하다. (2016년 가장 걷고 싶은 곳으로 지정)
괴산면 칠성리는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수달이 많은 천)이 흐르는 곳이었다. 1957년 이승만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 기술로 만들어진 최초의 '칠성댐'에 의해 이곳은 더더욱 오지가 되었다고 한다.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만든 길이 바로 이 옛길이다.
2011년 11월 댐에 가둔 물과 자연의 숲길은 조화를 이루어 사람들을 유혹한다. 나무가 있고 좋은 흙이 있고 물이 있어 그곳에 머무는 발길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지세를 갖추고 있다. 거칠지도 경사 지지도 그리고 높지도 않은 평온한 산책길에는 맛난 음식과 순수하게 미소 지어주는 마을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곳곳에 숨겨진 옛이야기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우비 바위 굴'은 지역적 특색으로 여름에 여우비가 종종 내리면 산길을 가던 연인들이 비를 피하러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괴산에는 5월생이 많다는 동네 어르신의 입담이 찰지다.
<산경표>에 '산은 강을 품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란 말은 이곳 괴산을 두고 한 말인가 보다. 그럼에도 산을 막아 마을을 막고, 막힌 마을과 산으로 사람이 길을 만든 곳. 그리하여 진정 나에게는 '길에게 길을 물었던 산책길'이었다.
중용에 의하면 학문에 이르는 길은 지극정성을 다하는 것이라 했다.
어쩌면 이런 독서동아리 사업은 사소한 모임을 위한 작은 시발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을 모으고 생각을 나누고 사고를 키워주며 자연에서 길을 찾게 하는 진정한 학습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내가 서 있는 곳을 새롭게 보는 통찰을 위한 길잡이 과정. 이 과정은 나에게는 마치 내 주위를 인식하고 따져보며 과감하게 알기를 종용하던 계몽의 시대를 경험하게 한 낯섦과 같았다. 단순 지식이 아닌 지혜를 나누는 공동체가 살아있는 전주시민을 위한 독서동아리가 내년에는 더 활성화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후기를 적어본다. 이러한 소소한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함을 배운 워크숍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