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6-10-20 15:56:43 | 조회수 | 1370 |
슬로 라이프-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
느리게 책을 읽었다. 빈둥거리며, 천천히 가는 삶을 이야기하는 책답게 작가의 문체는 조용하고 느렸다. 그렇게 글을 쓰기에 에세이만큼 좋은 장르는 없을 것이다. <슬로 라이프>는 일본의 문화 인류학자이자, 환경 운동가인 쓰지 신이치의 짧은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서너 페이지 분량의, 여백이 충분한,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가 사진을 포함해서 편집되어 있다. 페이지마다 남겨진 여백은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생각을 보탤 수 있었고,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 쉬어가곤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서너 시간이면 읽을 분량의 책을 이틀이나 걸려서 읽었다. 근간의 내 삶을 반성하기도 하고, 자족하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언젠가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고'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스스로 합리화시키는 방향으로 가려는 경향이 크다고 홍세화 선생님 강연에서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슬로 라이프>를 내 사고를 합리화시키고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집어 들었다.
작은 에세이 안에 작가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집어내고, 거기에 '느림의 철학자들'의 책을 소개하거나, 행동들을 옮기면서 삶의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한다. 쓰지 신이치는 현대인들의 삶이 너무 빨리, 고속, 가속화되면서 패스트푸드, 패스트하우스, 세계화, 온난화 시대에 살며, 전쟁과 공포의 불안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의 대안은 슬로 라이프(slow life)다. 슬로 라이프는 쓰지 신이치가 만들어낸 '브로큰 잉글리시'다. 그는 슬로 라이프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겠냐는 질문에 슬로 라이프의 시작으로 추천할 만한 것을 '걷기'(20)라고 말한다. 걷기에는 A에서 B로 가는 목적이 있는 걷기가 있고, 산책과 같이 빈둥거리며 걷는 걷기가 있는데, 작가는 산책과 같은 걷기를 슬로 라이프의 시작이라고 한다. 산책은 목적을 가지고 걷지 않기 때문에 '샛길로 들어가 한눈을 팔거나 멀리 돌아가면서 이것저것 살펴보는 것을 자신에게 허용하는 일이다.'(21) '노는 즐거움, 자신이 어딘가 목적지로 가는 길 위에 있다는 생각에서 해방되어 지금을 사는 자유, 그저 거기에 존재함으로써 얻는 기쁨'을 '인간의 존재 방식으로서, 본질적인 시간의 사용 방식으로서 말이다.'(22) 이는 쓰지 신이치가 <슬로 라이프> 전 편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의 전부라고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은 뭔가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이것이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보면, 사람들은 일이나 노동 자체를 훌륭한 것으로 믿고 있는데, 실은 그것이야말로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끼친다. 일의 내용보다는 일한다는 것 자체만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31) 노동의 존엄성이라는 도덕을 강하게 심어줌으로써 착취구조를 은폐하려 했다고 러셀은 지적하는데, 서양에서 산업주의와 근면 사상이 밀접하게 연관된 것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뼈 빠지는 노동으로 지배자들의 생활을 지탱시키고, 과잉 생산, 과잉 소비, 과잉 폐기의 '패스트 이코노미(fast economy)'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다. '패스트 라이프'의 삶을 작가는 맥도날드화, GDP, 개발, 새로운 빈곤, 지구 온난화, 전쟁, 남북 문제(남반구와 북반구의 불균형과 불평등 문제), 텔레비전, 자동판매기, 자동차, 육식, 등의 에세이 소제목에서 드러낸다. 하지만 <슬로 라이프> 대부분의 에세이들은 문제의식보다는, 삶의 대안과 공유하고 싶은 삶들의 모습을 기록한다. 책의 뒤표지에 에세이의 제목으로 사용된 주제어들을 몇 개 옮겨 보면, 걷기, 빈둥거리기, 안심, 스몰, 기다린다, 슬로 러브, 지금 여기, 있는 것 찾기, 슬로 머니, 머문다, 친환경 주택, 컬처 크리에이티브, 놀기, 에코 투어리즘, 노인과 어린이, 슬로 카페, 씨앗, 쉰다, 흙, 뺄셈의 발상, 촛불 등이다. 이 단어들은 작가가 함께 살고 싶은 세계의 모습을, 살고자 하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다음은 <슬로 라이프>에서 따온 내가 그에게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은 일부 문장들이다.
"상대가 자연이든 사람이든,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게 하는 일에 점점 더 서툴러지고 있다. 요컨대 함께 살아가는 일에 점점 더 서툴러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왜냐하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는 지금 남을 사랑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기다림을 뺀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55)
"잡일, 잡스러움을 허용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다."(64)
"육아. 사회화. 교육 등은 모두 시간이 걸리는 느린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에서의 느림만은 아니다. 사랑이란 본래 시간을 포함하는 일이다. 그것이 본질이기에 시간을 절약하거나 속도를 높이거나 효율화하는 일은, 그것의 본질을 훼손시킬 수밖에는 없는, 그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프로세스'일지도 모른다."(74)
"슬로 라이프란 안심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82)
"빈곤이란 '풍요로움'의 환상이 빚어낸 병이다."(100)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일'에서만큼은 아이들을 당해 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보내는 방법이 바로 놀이기 때문이다. 놀이는 바로 일상의 현실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합목적성으로부터 자유롭게 빛나는 것이다. '헛되기' 때문에 비로소 충실해지는 것이다."(195)
<슬로 라이프>를 읽으면서 나는 많은 부분 반갑고, 자족하는 마음이 일었다. 쓰지 신이치의 이야기들은 내가 사는 방식이 옳다고 말해주고 격려했다.
나는 몇 년 전에 십 오년간 타고 다녔던 자동차를 처분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차가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차를 없애고 나서 처음에는 택시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요즘은 버스나 택시를 기다리는 것도 귀찮기도 하고, 건강을 생각해서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다닌다. 시내를 다니는 데는 시간적으로도 전혀 손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천천히 가는 방식의 이동을 선택했더니, 자연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길거리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시선이 갔다. 아이들 등하굣길이 보이고, 주변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히 차가 없어, 물건을 많이 사서 옮길 수단이 없어지니 대형마트보다는 동네 마트를 이용하게 되고, 물건을 많이 사지 않게 되었다. 또한, 여행 방식도 변해서 가차나 버스를 이용한 여행이 일상이 되고, 심지어는 2박 3일간 만경강을 서너 차례 걷기도 했다.
'에코 투어리즘' 편에 작가가 "나무 밑에 앉아서 멍하니 섬의 바람을 맞아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262)하고 묻는 질문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이미 그렇게 하고 살고 있습니다. 답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차를 하나 없앴을 뿐인데, 슬로 라이프 삶을 실천하게 된 것이다. 슬로 라이프의 삶은 오늘을 사는(seize the day) 삶이자 '카르페디엠(Carpe Diem)'의 삶이다. "'지금 여기'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내일의 자신이 존재한다. 내일의 자기 자신을 포용할 자세가 되어 있을 때만이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도 있다."(283)
작가는 "우리는 모두 빈둥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은 아닐까. 지금이야말로 '빈둥거리기'를 회복해야 할 때가 아닐까."(288) 묻는다. 이에 나는 동의해, <슬로 라이프>를 읽으면서 내 친구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자, 친구들, 우리도 한 번 통 크게 빈둥대보자고!'
허나겸(재미지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