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8-11-21 14:13:48 | 조회수 | 1571 |
- 초록시민강좌 생태기행을 함께하고 -
환경운동연합 초록강좌를 인연으로 광릉숲에 갔다.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2010년에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광릉숲은 '광릉'(세조와 정희왕후)과 '광릉수목원(개명 국립수목원)'을 품고 있다. 문화재청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단풍명소와 광릉 크낙새라는 명성 때문인지 생태기행 신청자가 많아 버스 안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단풍이 물든 고속도로를 달리며 이성복 시인의 시도 읽고, 김성호 생태 작가의 철원 철새 이야기를 들으며 남양주에 도착했다.
조선 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40기)으로 전통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다. 지금도 제례가 이어지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인정되어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조는 화려한 묘역을 만들면 민폐가 심하다고 보아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조선 왕릉 최초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들고 중간 지점에 하나의 정자각(丁字閣)을 세우는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식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촬영사진으로 보면 숲에 하트 모양으로 묘역이 보인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 언덕이 세조, 오른쪽 언덕이 정희왕후 능이다. 풍수지리로 보면 여성의 양쪽 젖가슴과 같은 봉우리 모양이라고 한다. 조선의 정신을 지배한 풍수지리상 최고의 명당자리에 묻힌 세조였지만 자식들은 단명하였다.
광릉 숲은 1468년 왕릉에 딸린 숲으로 국가에서 500년 이상 관리를 해왔고 이곳에서 나무를 하다가 적발되면 나무를 벤 사람의 목을 잘랐다고 한다. 지금도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해 사전 예약을 하거나 일일 5천명만 입장할 수 있다. 희귀한 동식물의 서식처인 광릉숲은 국립수목원에 터의 반을 내주고 나머지 핵심지역은 일 년에 딱 한번 6월 광릉 숲 축제 때만 공개한다고 한다. 무릇 아름다운 것들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법이다.
광릉수목원 입구에는 커다란 붓에 풀이 자라난 형상의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숲 해설사 박종만 선생님이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늘 걸으면서 영어, 일어 등 3개 국어로 해설을 하신단다. 인문학적 숲해설로 유명한 분인데 수목원의 나무 이름이나 꽃 이름을 외우느라 정작 숲의 향기와 즐거움을 놓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지식보다는 감성과 영성을 위해 일부러 팻말을 제거한 수목원도 있다고 했다. 단풍철이 살짝 지나서 찾아왔지만 떨어지고 빛이 바래가는 숲의 모습이 더 애잔하고 아름답단다. 봄에는 벚꽃비, 여름에는 애벌레비, 가을에는 도토리비, 겨울에는 눈비가 내리는 숲의 공기는 바늘과 같아서 예리하게 뇌의 감각을 자극하여 EQ가 올라간단다. 이 분은 평생학습자로서 논어의 배우고 때로 익히는 즐거움과 벗이 찾아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삶을 숲에서 실천하는 군자다. 아마도 늘 티나게 아름다운 느티나무와 아낌 없이 주는 참나무, 신발 깔개로 쓰인 신갈나무와 담소를 나눌 것이다.
국립수목원은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떠났지만 나무는 호수 옆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육림호를 지나 전나무 숲을 향해 걸으며 산림녹화를 위해 심은 최초의 나무와 베토벤의 음악과 독일의 가문비나무 숲이야기를 들었다. 숲의 명예전당에는 산림녹화에 기여한 사람들의 얼굴이 새겨있었다. 산불 제로의 기록을 가진 광릉숲을 지키자는 맹세를 남기고 해설사와 작별하였다.
산림박물관으로 들어서자 천년의 나이테를 가진 북미산 나무의 단면에 우리나라와 세계의 중요 역사를 써놓았다. 천년을 견딘 나무결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대자연 앞에 숙연해졌다. 친근한 식물을 손으로 그린 세밀화에서는 작은 것들에 깃든 아름다움과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덧없는 욕심이지만 크건 작건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단풍철 때문인지 차가 많이 밀렸다. 사람들이 만든 도시라는 숲에는 지옥고(지하, 옥탑방, 고시원의 줄임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일기일회의 삶을 어려운 환경에 처한 천연기념물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광릉숲에 깃든 생명의 울림처럼 모두의 삶이 나아지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