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6-07-25 10:52:06 | 조회수 | 1450 |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유쾌한 인문학 강의를 듣고
상산고등학교 3학년 황수지
한 무제 때의 역사가인 사마천은 어릴 때부터 역사학자로 길러져 뼛속까지 역사서 기술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한 무제에게 충직한 신하를 두둔하는 직언을 올렸다가 억울하게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사마천은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소신 있게 한 발짝을 내디딘다. 죽느니보다 못한 형벌인 궁형(거세 형벌)을 택한 것이다. 오로지 역사서를 완성하기 위한 일념 때문이었다. 그는 의미 있는 죽음을 위해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하고, 역사의 저 뒤편에 찌그러져 있던 사람들을 차별 없는 시각으로 후손들 앞에 당당히 내세운다. 결국, 발분의 결과로 저술을 시작한 그 자신도 치욕을 씻고 일생의 한을 풀게 된다.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라고 말하는 고등학교 3학년, 매일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는 데 수 시간을 투자하는 이과생인 내가 어울리지 않게 사마천의 생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그렇게 뜬금없는 일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계열 선택의 길목에서 인문학적 희열과 자연 과학적 명쾌함을 놓고 갈등하던 나는 취업 걱정을 미리부터 해 가며 최종적으로 이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인문학적 지식을 항상 목말라했다. 인문학 내용이 화두로 나오면 어김없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내 모습에 한탄하기도 했다.
유쾌한 인문학은 나의 그런 갈증을 해소해 줄 만한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빼먹는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고 초조하기도 했다. 매 순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것이 수험생의 미덕이라고 생각했었기에 모든 처사가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한 화요일은 모의고사를 보고 난 날이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수험생활이 막막하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그날은 사마천의 "사기"라는 새로운 주제의 강연이 있었다.
나는 사마천과 사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강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연을 들으며 사마천이란 인간에 대해 알게 될수록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분명히 인지하고 역사를 저술해야 한다는 소명을 실천으로 옮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한참 사색에 빠졌다. 강연을 듣기 전 나는 대한민국 수험생의 당연한 고민이라고 포장하며 친구들과 인생의 처세술을 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이바지할 만큼 값지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닌지…. 과연 어떤 삶의 태도에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잠들기 전 내 마음은 훨씬 풍요롭고 여유로워졌다. 한 발짝 앞이 아닌 내 인생 전체를 보고 세상을 위해 공부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당장은 지금의 이 수험생활을 힘 닫는 데까지 열심히 해야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 이 시대의 고등학생들에게서 사마천과 같은 소신 있는 한 걸음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입시소식을 습득하고 손이 기억할 정도로 많은 문제를 풀어봐야만 '성공'한다는 교육현장에서 누가 일보(一步)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지. 지금은 대학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직선도로를 달리고 있지만, 그 후에도 사실은 살아온 만큼의 몇 배나 되는 험한 갈림길들이 남아있다. 우리는 갈림길에 설 때마다 나의 존재 이유를 최우선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어느 길로 발을 내디딜지 결정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어느 쪽이 북쪽인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킬 수 있는 나침반을 가지는 것은 꽤 중요하다.
나는 이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형이상학은 형체를 초월한 영역에 관한 과학이라는 뜻으로 철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믿을 수 없이 놀라운 발전을 이뤄 냈지만, 한동안 형이상학을 외면해왔다. 하지만 이 근원적인 학문은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윤곽을 그려주고 목표를 실현하는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 또래의 학생들이 형이상학적인 것들과 더 친해졌으면 좋겠다. 일상의 물질적인 것에서 조금 벗어나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이 세상에서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맡은 소중한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굳이 인문학이 아니어도 좋다. 단지 평생 지니고 갈 나침반을 얻어 ‘백척간두 진일보’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