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6-08-23 09:59:52 | 조회수 | 1413 |
내가 그릇을 빚는 이유
전주시평생학습관 도예물레반 수강생
이미경
일본 차인(茶人)들은 천황을 알현하는 것보다 국보 사발인 진주멧사발(기자이몽이도)를 직접 보고 만져보는 것을 더욱 영광으로 여긴다고 한다. 도자기로서 일본 최초로 국보가 된 사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오래전 한반도의 태토(胎土)로 한민족의 사기장에 의해 빚어져, 진주 부근의 민가의 제기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한낱 서민이 늘 사용하던 그릇을 국보의 반열에 올려놓고 감상할 수 있는 그들의 심미안이 경외롭기도 하거니와, 그보다는 그 옛날 우리 민족의 뛰어난 기술과 예술혼이 나에게까지 조금이라도 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간절하게 다가온다.
나는 전주시평생학습관의 도예반 회원으로 7년째 살아오고 있다.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또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전업주부였기에, 집에서 쓸 그릇을 손수 만들어 볼 요량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좀더 특이한 형태, 새로운 조합을 생각하며 '작품'이라는 것을 하고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그래서 도자기뿐만이 아니라 회화며 조각, 각종 공예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를 쫓아다니고 서적을 뒤적이며 새로운 발상을 위해 노력해보지만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나도 이젠 그릇 만들기가 아닌 도예를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커다란 모순이라고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오래전 도예 관련 책을 찾던 중에 우리 사발에 대해 쓰인 책을 만났다. 그 속엔 우리가 도자기에 대하여 잘못 쓰고 있는 어휘에 대해 지적해 놓은 것도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도공(陶工)이다. 이 말은 일본식 말이며, 이를 고쳐 부르면 사기장(沙器匠)이라고 해야 한다. 또, 막사발이라는 말도 일본인들이 우리 사발을 깎아내려서 부르는 말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일본의 국보가 된 우리 사발을 그때 보게 되었다.
비록 책 속의 사진이지만 그 국보 사발은 참 아름다웠다. 아무나 함부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었기에 최고의 기술로 찍은 사진이었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정말 선명해서 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약간 비틀린 듯한 형태에서의 여유로움과 잘 익은 비파 열매 빛깔에 한참을 넋을 잃고 보았던 것 같다.
'나도 저렇게 만들고 저런 빛깔이 나오는 유약을 바르고 불도 때볼 수 있다면..'
그리고 알았다. 내가 지금 만드는 것이 식탁에 놓이든지 콘솔에 놓이던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어떤 용도로 만드는 게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명작이라는 것은 고고하게 장식장에 올려져야 할 용도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밥그릇의 용도로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아름다우면 장식장에 올려진다는 것을.
팔순을 훌쩍 넘기신 나의 아버지는 막내딸의 소식이 좀 뜸하다 싶으면 불현듯 전화하셔서 말씀하신다.
"아직도 항아리 만들러 다니냐?"라고.
그렇다. 아버지에게 있어 도예는 항아리 만들기이듯 나에겐 그릇 만들기이다. 항아리이든 그릇이든지 간에 무엇을 빚든지 온 힘을 기울여 해 볼 일이다. 그래서 내가 만든 그릇을 누군가가 오래도록 쓰다가 땅에 묻혀 수백 년 수천 년 후에 우연히 발굴되어 이 시대의 흔적을 후손들이 읽어준다면 그것으로 지금의 도예를 하는 보람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