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관리자 | 등록일 | 2016-11-25 15:45:09 | 조회수 | 1155 |
역사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전진아 (이심전심)
초등학교 소풍갈 때의 들뜸인가요? 여고생 수학여행의 터질 듯한 설렘인가요?
세월에 딸려온 남편과 아이들을 잠시 지워두고 떠나는 기행은 그 때의 감정을 저에게 선물합니다.
서둘러 준비하여 버스에 올라 타 가는 길이 낯선 듯 익숙하네요.
서울에 들어서기 전 간단한 서울 도성 이야기와 오늘 기행지인 종로의 옛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역사지식이 짧아 전부 이해할 순 없었고, 들으면서 '저걸 어찌 다 외고 계신 걸까' 라는 감탄을 먼저 할 수밖에 없었네요. 그러고 나서 들어선 종로거리는 예전 그대로인 듯한데, '그래.. 여기가 조선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은 처음 해보았습니다. 보고 듣기를 하지 않았던 때와, 지금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또다시 느낍니다.
부푼 마음으로 '윤동주 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원고지에 정갈하게 써내려간 글씨체만 봐도 가슴 뭉클 눈물이 맺힙니다. 스
물일곱에 멈춰버린 그... 내 어린 시절엔 곱상한 외모에 강한 의지를 가진 세련된 시인 오빠였습니다. 지금의 나에겐 아까운, 못내 안타깝게 가버린 청년으로 다가오네요.
가압장을 그대로 고친 물탱크 전시실은 그의 뻥 뚫렸을 마음의 스산함인 듯도 하고, 빛 없는 옥살이의 괴로움인 듯도 합니다. 그의 짧은 동영상을 보면서,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이 떠오릅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제가 자꾸만 부끄러워집니다. 그의 시에 빗댄다면 양심의 구김을 펼 용기가 없어 부끄럽습니다.
기념관 뒤쪽으로는 시인의 언덕이라 이름 붙여진 탁 트인 동산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이곳을 매일 아침 산책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곱게 물든 단풍나무, 산책길, 서울 전경, 몇 천 번이고 좋을 멋진 풍광. 지금 나는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즐겁기만 한데, 그의 마음을 짐작하니 마음이 쓰립니다.
산책길을 따라 내려가 두 번째 장소인 '청운문학도서관'에 도착했습니다.
숲속에 조용히 운치 있게 앉아 있는 한옥도서관! 함께한 사람들이 많아 어수선하고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던 곳입니다. 욕심이지만 고즈넉할 때 혼자 앉아 있거나, 좋은 사람과 둘이 앉아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고 싶은 장소였습니다. 아! 이색적인 것은 항아리에 가득 담긴 시 두루마리였습니다. 포춘쿠키를 깨듯 무작위로 담긴 시들이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습니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다"
두루마리 시를 펼쳐본 몇몇 선생님들은 자신의 상황과 맞는 시 같다고들 하십니다. 시는 진짜 주인들을 잘 찾아간 거겠지요?
단체석 갖춘 식당을 찾기 위해 세 시간을 고군분투 하셨다던 담당선생님 덕분에 맛난 점심으로 배를 든든히 채웠습니다. 든든한 몸과 마음으로 세 번째로 향한 곳은 부암동 골목길에 위치한 '무계원'입니다. 이번 기행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이다음 10년간은 모르고 지냈을지도 모를 나름 고지대에 위치한 장소예요.
무계원을 찾아가는 오르막 골목길은 서울이라고 하기에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와 단독 주택들이 모여 있습니다.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사용하던 정자인 '무계정사지'가 있던 터 일뿐, 그 흔적은 찾을 수 없고 현재는 도심 속 전통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전통한옥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깨끗하고 세련된 모습이고, 자갈돌 깔린 정원이 예쁜 공간입니다. 여기가 우리 집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무계원을 나서서 마지막 목적지는 강남 노른자 땅에 위치한 북 카페 '최인아책방'입니다. 복층구조로 목을 꺾어 올려다보아야 책장의 끝이 보이네요. 영화 속에서나 보던 그런 장면. 조용히 앉아 차와 함께 책을 읽는 사람들..
낯설지도 익숙하지도 않는 모습입니다. 내 가까운 곳에도 이런 곳이 있었음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
주인장은 20년 동안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기에 더 이상 일에 미련이 없어 접고, 다시 시작하게 되신 일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해보니 책을 들고 앉아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셨다고...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자며 낸 것이 이 책방입니다. 이분의 짧은 강의를 듣고 저는 또 저를 들여다봅니다.
나는 열정을 쏟아 부은 일이 있던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본적이 있던가.
나의 자책은 뒤로하고 이 책방의 주인은 마인드가 남다르십니다.
모두를 위한 경제, 공유경제를 말씀하십니다. 문화적으로 우리의 안을 채웠을 때 충만함을 느낀다고도 하십니다. 아는 게 힘인 시대는 가고, 이제는 생각의 힘이 있어야 하는 시대라고 하십니다.
저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이었지만, 주인장의 이러한 마음가짐은 이렇게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멋진 책방을 꾸려나가는데 큰 버팀목이 되어 줄 것입니다.
다만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책을 많이많이 구매해주셔야 할 텐데..라는 걱정이 되네요.
저의 첫 기행은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본받고 싶은 선생님과 책을 읽는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본 것도 많고, 들은 것도 많은 기행이었습니다.
기행의 유쾌함과 더불어 아직은 티끌 같은 나의 식견이 조금은 더 자랐겠네요.
행복할 일들이 많고, 고마울 일들도 정말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