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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책읽기] 한국의 질곡어린 근대와 디아스포라의 가족사를 엿본 미술순례
관리자 2011-08-25 조회 4023


화려하고 다양한 볼거리들로 치장된 미술관람기들이나 미술사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부러움과 질시가 반반씩 마음을 차지한 적은 많았다. 그러나 『나의 서양미술순례』는 저자의 먹먹한 가족사의 고통과 시대의 아픔들이 그림보다 먼저 다가와 읽는 이에게 애잔한 슬픔을 안겨 주었다. 익히 알고 있었던 고흐나 피카소, 벨라스케스의 그림들은 저자 서경식의 고통에 감응해 다르게 보였고, 미처 접해보지 못했던 작품들은 그의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진실이었다.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순례』는 젊은 시절 양친을 다 잃고 극도의 허탈감으로 두형의 옥바라지와 양친 병수발로 지친 막내 누이의 여윈 손을 꼭 잡고 가진 재산을 털어 쫓기듯이 떠난 유럽미술여행기이다. 그러나 미술여행기라기보다는 그의 근대사 속 가족수난사를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는 잔혹한 한국근대사이기도 했다.
재일교포 2세인 서경식은 도쿄대학 불문학과를 나와 몇 년 전까지도 한국 성공회대 교환교수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나는 ‘한겨레신문’에서 그의 디아스포라 관련 글을 몇 번 읽었던 경험으로 일천하게 그를 만났었다.


그러나 그의 고통의 정점이었던 30대 시절의 저서인『나의 서양미술순례』는 근래 들어 시들한 일상 속에서 평균적인 전염병을 앓고 있던 내게 과녁을 뚫는 화살처럼 다가왔다. 고작해야 미술관람기여서 심심풀이로 챙긴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삶의 뼈아픈 성찰을 내게 요구했다.
내게 서양미술공부는 짐짓 마음 한 구석에서 나를 파먹고 있는 허영심의 발로였다. 물론 나를 변화시키고 성찰의 기회를 준 작품들도 여러 편 있었지만, 인간의 장점인 ‘기억소멸증’으로 인해 가물가물할 뿐이었다.
서경식의 발을 딱 얼어붙게 했던 이 책 속의 몇몇 작품들은 물론 내 발을 얼어붙게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얼어붙게 한 원인이 내 마음을 붙들었다.


브뤼주에서 저자가 마주친 헤랄드 다비드의 ‘캄비세스왕의 재판’은 피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는 가열한 사실정신에 압도당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왼쪽 발목에서 뒤꿈치 언저리의 날가죽을 벗기는 사나이에 붙박힌 서경식은 곧바로 아버지의 죽음을 연상한다. 어머니가 암으로 가신지, 3년 만에 똑같은 병으로 가신 아버지. 어려서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흘러들어와 끔찍한 고생을 하신 아버지는 말년까지 남한에서 간첩단으로 선고받고 투옥된 두 아들로 인해 마음고생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한 많은 죽음 때문이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3개월이 지난 어느 무더운 날, G시에 사는 맏형네 집에 마쯔무라라는 아주머니가 찾아와 “물……물을 다오”하고 걸걸한 사내 목소리로 말했다는 것이다. (중략)그것은 영락없는 아버지 목소리였다는 것이다. (중략) 마쯔무라 씨는 왼쪽 발목을 자꾸 만지면서 “여기가…… 나른해”하고 중얼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한 많은 죽음은 구천을 떠돌면서 모르는 무당여인의 영혼과 감응해 자식들을 찾아온 것이었다. 왼쪽발목은 아버지가 병원에 있을 때 주사바늘을 수없이 꼽아놓던 부분이었다.
이처럼 여행길에 무심코 들른 미술관 등지에서 갑자기 얻어맞은 듯 저자를 붙잡아놓은 그림들은 한사코 그를 생활 속으로 밀어 넣는 가족과 시대와 오버랩되는 것들이었다.


‘이상한 그림이었다.
휘갈긴 듯한 독특한 터치, 부인의 눈동자 같은 데는 물감덩어리를 이겨 발랐을 뿐 아닌가. 그런데도 그 눈길은 아련한 두려움과 슬픔을 담고 있어 무언가 긴 이야기를 걸어온다.
어째서 이렇듯 강렬한데도 이렇듯 고요한 것인가?……’
에꼴 드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 수틴의 작품 ⌜데세앙스⌟는 실추, 실종이라는 의미이다. 짓이겨진 물감은 그에게 눈물로 다가왔고, 유태인이었던 수틴과 그의 친구 모딜리아니의 죽음 또한 그의 가족들의 수난이나 양친의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죽음이었다.


그리고 루브르미술관의 미켈란젤로의 ⌜빈사의 노예⌟와 ⌜반항하는 노예⌟보면서,


‘형을 대신하여 이 눈으로 그것을 확실히 보아둘 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 명분 없는 여행을 떠나기 위한, 내 스스로에 대한 구실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노예’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형에게 보낼 그림엽서에 적을 소감을 정리해 보려고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뭐라 이름하기 어려운 광풍이 소용돌이쳐 도무지 진정할 줄 모른다. -중략-
‘노예’는 나의 형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구절을 읽으며 저자의 그 당시 소용돌이치는 광풍이 작게나마 내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 광풍들을 저자는 어떻게 이겨냈을까. 나는 가슴이 아릿해 책을 덮고 싶었다.


하도 많은 이들이 사랑하고 자주 접한 데다 다양한 미술평론가들의 글을 많이 읽어서인지,  나도 조금은 고흐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화단의 전설이 아닌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되어버렸기에 이 책에서 언급되는 것이 조금 의외였다.
그러나 서경식이 본 고흐는 내가 아는 괴짜 천재화가 고흐가 아닌 테오의 사랑하는 형, 그림으로 자신의 ‘무서운 정념’을 표현하고 싶었던 -“나는 빨강과 초록으로 인간의 무서운 정념을 표현하고 싶다”-극도로 고독하지만 창조자, 구도자, 혁명가로서의 예술가였다.
그런 고흐도 테오에게 자신이 저주스러운 짐짝이 되어있는 것에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죽음을 초대한다.


 “내 생활은 뿌리가 뽑히고 내 걸음걸이도 휘청휘청한다. 나는 내가 너희들의 저주스러운 짐짝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전적으로 그렇진 않을지 몰라도 어쨌든- 염려하게 되었다”


슬픔과 고독을 처절한 색채감각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고흐는 서경식의 그 시절-전두환 정권-남한의 0.7평의 독방에서 저항하고 있는 두 형이었고, 그 형들을 위해 평생 구명운동을 해야 했던 서경식은 고흐의 처절한 예술의 당사자였던 동생 테오였다. 일본의 평론가는 ‘이상을 품지 않고, 자기실현을 포기하고 평균적인 삶과 남다르지 않은 죽음을 바라고 있는 우리들이야 말로 고흐의 가차없는 고발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테오는 죽음으로 죗값을 치렀기 때문이란다. 고흐가 죽고 얼마 후에 죽음을 맞이한 테오는 고흐 옆에 나란히 누워 그 슬픔과 고독을 다시 나누고 있을 것이다. 서경식은 형들과 함께 죽을 수도 없고, 갇혀있을 수도 없기에 어쩔 수 없는 무기력감과 단절감을 느끼기는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단절’을 간단히 인정하고 싶진 않다’고 피력한다.


스페인으로 향하는 야간열차 속의 저자는 흡사 정처없는 망명자의 심경이 된다. 어쩐지 무서운 파국이 예상되고, 정치적인 사건들이 우후죽순 벌어지고 있는 80년대 한국의 상황때문에 두 형의 안위가 걱정되었지만 돌아가기도 싫었던 저자의 마음이 가슴이 아플 뿐이었다. 프라도미술관에서 본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그린 사람의 정신의 거대함이 단적으로 나타나 육박해오는 장엄한 느낌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던 저자는 일제로부터, 군부로부터 독재자로부터 굴욕과 수탈을 당한 우리 민족은 과연 우리들 자신의 ⌜게르니카⌟를 산출해냈는지, 우리 민족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아직 가벼운 건지 침울한 의문을 건넨다. 그의 의문은, 그리고 우리의 공허한 의문들은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면 어떠할 것인가. 아직 젊은 나는 할 말이 없다. 한국에 살면서 디아스포라였던 서경식과 그 형들은 일본에서도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지난한 삶은 조국에 의한 것이었고, 그 조국은 여전히 그들을 가둔 질곡의 역사 속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 있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며 그들 가족에게 죄책감을 가지지 못한 자는 누구인가 나는 묻고 싶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의 작품을 바로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벨라스케스와 고야를 꼽고 싶다. 어김없이 서경식도 그들에게 많은 장을 할애하고 있다. 스페인왕정의 몰락의 시기에 살았던 벨라스케스는 궁정화가로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따 왕녀와 그 가족들, 하인들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반면 그는 궁정 안의 난쟁이들과 광대들도 주로 작품의 모델로 삼았다. 서경식은 그가 그린 ⌜돈 세바스찬 데 모라⌟라는 난쟁이 광대의 초상화에서 어둠을 읽는다. 고야의 ⌜5월3일⌟은 나폴레옹군대가 프랑스혁명을 전파한다는 구실로 스페인을 침공해 스페인양민들을 학살한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서경식은 역사란 것이 약자들의 희생을 차곡차곡 쌓으며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희생의 열매는 또 낯 두꺼운 구세력에게 뺏기기도 한다는 사실과 희생이 없이는 열매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간단치 않은 이해를 강요받으며 보는 벨라스케스나 고야의 그림은 그에게 암담함만 안겨준다.  
고야의 ‘귀머거리의 집’ 벽에 그려진 ‘검은 그림’시리즈 중 ⌜모래에 묻히는 개⌟를 보며, 허겁지겁 모래의 급류를 헤엄쳐 건너는 개는 고야 자신이라는 것을 저자는 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 개는 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직접 그 그림을 보지 못하고 책에서만 본 나도 이 개에게서 나를 보았다.
스페인을 떠나 영국 런던, 버밍엄근교 호수가 있는 시골까지 온 서경식은 그곳 작은 호텔방에서 꿈을 꾼다. 어린시절 소학교 친구들과 가족들과 아버지와의 다툼 끝에 눈이 시뻘개진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자신도 고함을 지르며 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쳐온 것인가? 무엇을 찾고 있나?
이제 슬슬 돌아갈까……길 떠나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면서 그는 어디선가 루쉰의 글을 되뇌인다.
‘생각하건대 희망이란 본시부터 있다고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1988년 셋째 형이 석방되고, 둘째 형의 구명을 위해 서경식은 한국을 왕래하기 시작한다. 2년 후 둘째 형도 석방된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의 운명은 아직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 운명을 초래한 근간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년간의 세월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지만, 뒤집어보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할 수 있는 것은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그저 묵묵히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이행할 뿐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