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심 전주'를 읽고
박숙자(우아2동장)
후배님! 저는 60년대 중앙초등학교를 다녔기에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과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랐습니다. 어릴 적 경기전과 오목대는 학교 끝나면 놀이터처럼 놀러다녔는데요. 올 가을 장구한 전주정신을 찾아 읽었던 「꽃심 전주」의 마지막 장을 닫고 나니 어쩌면 저의 성장에 영향을 끼쳤을 웅비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녁하늘은 달빛이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연하늘색입니다. 저토록 장엄하고 위대한 명화 같은 밤하늘, 누군가 저를 위해 그려 준 게 아닐까요. 생각해보면 그동안 자연이 그려주는 신비의 그림들을 매 순간마다 보며 살았을 테지만 이처럼 벅차게 느끼며 바라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벌써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마음수련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때 돌 하나, 풀잎 하나에 깃든 영혼을 느껴보라고 해서 한참을 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묵묵히 저를 바라보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의 생명으로 느껴지면서 몇 년의 세월인지 모를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뎌온 바위의 감정과 제가 견뎌온 시간의 감정들이 합쳐 뜨겁게 눈물이 흐르더군요. 존재하는 생명체와 생명체로 만나 지난 시간을 다독여본 평화로운 시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책이 저에게 그 때의 느낌을 주었던 것 같아요. 천년 넘도록 전주라는 이름으로 버텨온 이 땅에 그토록 많은 함성과 저항, 자애와 희생, 포용과 넉넉함, 순정과 열정, 대의와 기상이 시대마다 역사의 하늘을 찌를 듯 충천했었다니 온 몸에 전율이 올라 올 정도입니다.
700년 백제의 찬란한 부흥을 주창한 견훤이 세운 나라 후백제의 도읍지,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풍패지향 전주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두 개의 왕조가 이어진 왕도의 땅이었습니다.
'이 땅은 백성을 넉넉히 품어 안으면서 온갖 쇠한 것들까지 다시 일어나게 하는 백폐구흥(百弊俱興)의 땅이다'는 책속의 마지막 글에 뭉클해지지 뭡니까. 금방이라도 오목대에 오르면 태조 이성계가 불렀다는 대풍가의 위풍당당함이 남아있어 흔들리는 우리를 똑바로 서있게 할 것 같지 않습니까.
해마다 철철이 피는 수천가지 꽃들은 그 꽃잎 하나 피우기 위해 꽁꽁 얼어붙은 동토의 시간을 견디지요. 이렇듯 전주라는 땅은 천년 넘게 수없는 핍박과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예술과 문화의 자태가 꽃처럼 피고 지고 또 융성하며 피어났습니다.
전주정신 선언문에서도 '하늘과 땅의 기운을 제 몸 깊숙이 받아들여 하나의 우주를 온전하게 피워낸다'고 했습니다. 실로 전주는 온전함과 완전함의 도시임이 분명합니다.
조선의 전주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 위상을 떨쳐 넉넉함을 가져다주었다지요. '그 넉넉함이 전주를 전통의 기품 있는 도시로 만들었고 풍류의 문화예술을 꽃피웠으며, 국난극복과 새 세상에 대한 열정이 강한 도시로 만들었다'고 한 책속의 글은 왠지 빛나는 과거를 이어가는 현재의 삶이 좀 더 품격 있고 더 이상은 조급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있는 듯합니다.
'천년이 가도 끝끝내 그 이름 완산이라 부르며, 꽃심 하나 깊은 자리 심어 놓은 땅, 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이라고 썼던 불멸의 작가 최명희는 투명했고 맑았던 그의 영혼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우리 곁을 떠났다 생각했지만 그의 글과 말은 영원한 꽃의 나라 '꽃심의 땅, 전주'에서 여전히 시들지 않은 채 피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도 권해주면 시대마다 앞서갔던 수많은 전주사람들의 기개와 기지를 느끼게 될 터이고 치열한 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세대에 따뜻한 다독임이 될 것 같습니다. 소망이 있다면 그들에게 고고한 하늘처럼, 너른 들녘처럼, 생명의 힘찬 물줄기처럼 주변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꽃의 힘이 생겨나기를, 그래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기쁨을 누렸으면 합니다.
만민평등 혁명의 꿈을 펼치고자 했던 정여립의 사상도 사실 이 땅을 공평하고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꽃심의 마음, 대동의 정신이었습니다. 기축옥사로 피 묻은 채 꽃은 꺾였지만 후손으로 살아가는 전주사람들에게는 늘 정의가 살아있고 평등을 갈망해 왔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전주사람들의 성향이요 기질이 되어 기운이 되고 정신이 되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한옥마을에 가보면 전동성당과 경기전이 마주 바라보며 서있는데 천주교와 유교, 기독교와 불교 모든 종교를 가리지 않고 번성했던 평등과 화합의 땅이 전주였음을 알게 합니다. 필시 전주는 조화와 포용의 숨결이 쉼 없이 일었던 곳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밥 먹는 게 평등하고 신분의 차별 없이 고른 세상을 향했던 대동의 꿈은 지금도 전주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습니다.
엊그제 5년 넘게 독거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대접해온 명품 국수집이 영업을 종료했는데 제일 먼저 어르신들이 서운해 하실 것을 걱정하는 주인에게서 아름다운 '꽃심'을 느꼈습니다. 동네일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이웃을 위해 재능을 기부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는데 신기한 점은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는 사람들일수록 얼굴이 환하고 늘 웃는 표정이더라고요. 그리고 한 결 같이 봉사하고 후원하는 일을 통해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들 계십니다. 고군분투하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려는 대동의 성품을 바라보면서 이 땅, 전주라는 땅위에 먼저 살았던 선조들의 헌신적 모습이 투영되는 듯했습니다.
하나의 꽃잎으로는 꽃을 이룰 수 없고 꽃 한 송이로는 꽃동산을 이룰 수 없듯이 이렇게 한 분 한분 아름다운 꽃잎들이 모여 전주는 기부와 봉사의 꽃이 소담스럽게 피어나고 그 꽃들이 동산을 이뤄 가는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우려 낸 한 잔의 차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한 장의 문장과 한 줄의 서예와 빛바랜 서화에서도 세상에 없는 풍요를 느낄 줄 아는 전주, 전주가 지닌 여유로움과 따뜻함은 천년 넘도록 지켜진 '꽃심의 땅 '이라는 영토적 공간과 '꽃심'이라는 정신적 공간에 피어난 수천, 수만의 꽃잎이 흩어졌다 다시 모여 이룬 전주만의 위대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이 땅은 유독 많은 판소리 명창의 터전이 되었으며,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찾는 골목을, 버드나무 휘영청 늘어지고 맑은 물빛으로 휘돌아가는 전주천 구비 길을 옥구슬 엮어 내듯 맛깔나게 써내려간 시인과 문인들이 줄을 이었으며, 고귀한 가문에만 심을 수 있었던 회화나무가 몇 백 년 세월을 견디고, 붓에 용의 기운을 담아 힘차게 써 내려간 올곧은 선비들이 청청하게 글을 읽고, 강학에 힘쓰며, 천하를 호령하듯 살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주는 천년 넘게 변함없이 그 이름을 지켜오면서 역사를 썼으며, 이 나라 독립과 민족혼의 발상지로, 예술인의 선봉지로 언제나 높이 올곧음의 깃발을 들었지 않습니까. 그러한 저력으로 이미 세계적 명품 영화제 반열에 선 전주국제영화제가 탄생해 가지를 뻗어가고 있으며, 삼백년 넘은 전주대사습은 국보급 명창을 꿈꾸는 사람들의 찬란한 희망의 무대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립무형유산원, 소리문화관, 부채문화관, 전주국악방송 등 이 모든 자산이 진정한 흥의 도시, 풍류의 도시 전주를 더 들썩이게 하고 더 창창하게 무르익게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꽃은 연약해보이지만 혁명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강인하고 불처럼 일어나며, 우주를 품어 신비롭고 웅장합니다.
새로운 세상 창출을 위해 끝없는 도전과 창의를 쏟아냈던 전주는 각자의 독특한 개성이 피어 형형색색의 꽃으로 가득합니다. 대동과 풍류, 올곧음과 창신의 정신이 달무리 지듯, 꽃무리 지듯 꽃잎이 되어 피어 있습니다. '전주인'으로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출생지는 아니지만 제2의 고향인 저에게도, 생각해보니 후배님의 출생지는 모르겠지만 고향이 어디든 현재 전주에 살고 계신 후배님에게도 천년의 힘이 꽃으로 피어난 '꽃심의 정신'이 분명히 높은 자존감과 자긍심을 찾게 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