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0월 성인문해교육 현장체험학습에 함께하다 -
날이 참 좋았던, 단풍과 함께 물들어가던 10월의 어느 날.
나흘에 걸쳐 한글을 공부하는 어르신들이 박물관에 견학을 다녀왔다.
다녀온 곳은 효자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국립전주박물관과 이웃한, 전주의 역사·문화·풍습을 주로 전시 한 '전주역사박물관'.
전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함께 했다.
이른 아침부터 어르신들의 마음은 '현장체험학습'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설렜다. 마치 정말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단어였다.
박물관에 도착한 어르신들은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학예사의 전시해설 안내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 한글 공부를 할 때처럼, 어쩌면 그 보다도 더 빛났을 지도 모른다.
1층의 구석기부터 고려시대까지 전주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주역사실에서는 어르신들의 차분한 이동이 진행되었다. 발굴된 각종 시대의 유물을 살펴보며, '이게 뭐하는 도자기인가? 물독인가? 무덤인가?' 하는 토론도 이어졌다.
문해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되짚어가며 살펴보았는데, 책에서만 보던 유물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신기하다는 감상이 있었다. 조금 어려운 내용이라 여겨지다가도, '온전한 고을'이라는 전주의 지명을 알고 나니 전주를 더욱 이해하기 쉽기도 하였다.
5층의 조선시대 전주의 역사는 어르신들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간 것 같다. 전주성 모형을 살펴보며, 여기가 남문이고 동문인가 눈으로 보며 살펴볼 수 있었다.
경기전 어진 박물관에서 자주 보았던 태조 어진을 다시 감상하고, 1900년대 초반 전주 옛 사진을 보며 초가집으로 가득했던 공간이 지금은 도로가 뻥뻥 뚫려 있다며 격세지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고 하신다.
어르신들은 3층의 기획전시실을 둘러보며 전주정신과 꽃심의 근원, 그리고 전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펴보며 어르신들은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한지로 만든 부채와 자개장 등을 보며 '우리 시어머니가 이런 것들 가지고 계셨지'라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한지로는 못 만드는 게 없지. 요즘은 뭐 양말이고 옷이고 다 만들잖아'하며 한지 박물관에서 직접 한지를 떠 본 일, 한지로 만든 의류 등을 생각해보기도 하셨다.
한글을 공부하는 어르신들이라 그런 것일까. 유독 학구열이 넘쳐나는 듯하였다.
많은 어르신들이 박물관에 전시된 큰 주제를 소리 내어 읽어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세세하게 읽으며 읽는 연습을 하셨다. 뿐만 아니라, 학구열이 넘친 한 어르신은 박물관 견학 내내 수첩을 들고 다니시며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는 큰 주제를 받아 적으셨다.
학예사와 함께 하는 박물관 전시해설을 다 들은 이후에는 1층 로비에서 탁본 체험을 진행하였다. 잉어가 그려진 '효 문자도'와 '옛 전주성지도'를 탁본으로 떠볼 수 있었다. 두 도안 모두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특히 옛 전주성지도는 손자들이 볼 수 있게 집에 걸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체험을 많이 하셨다. 또한 효 문자도는 잉어가 효(孝)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니 아들, 또는 딸에게 보여주며 '나에게 효도 해라~'라는 말을 대신하고 싶다 하셨다.
예전에 다듬질하던 기억을 되살리며, 어르신들은 차분하면서도 정확하게 잉크를 찍어내셨다. '내 것이 잘 되었네', '네 것이 더 잘 되었네' 하며 옥신각신 하다가도, '잉크가 좀 흐린 것 같으니 한 번 더 찍게 해줘~' 하는 개구쟁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셨다.
어르신들은 박물관 야외에 마련된 민속놀이인 '투호놀이'와 '고리 던지기'를 하며 잠시나마 동심으로 되돌아가보기도 하였다. 바닥에 청 테이프로 그려진 선을 넘으면 안 된다며 서로서로 견제하는 모습에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고리 던지기가 잘 되었을 때는 뛸 듯이 기뻐하다가도, 잘 되지 않았을 때는 아쉬워 하는 모습이 마치 소녀처럼 싱그러웠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박물관을 그냥 나오기가 아쉬웠는지 '구경을 잘 했다'는 인사를 꼭 해야겠다며 메모를 남기는 분도 많이 계셨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어가는 소감이 오늘따라 더욱 환해 보인다.
글/양새롬(전주시평생학습관)
사진/이희진(금암노인복지관), 한경훈(전라북도노인복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