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판본의 맥(脈)을 이어가는 목판서화관 -
누구나 태어나자마자 말하고 글자를 읽거나 쓰는 것은 할 수 없다. 그것은 개인 안에 내재된 본능이 아니라 인간이 삶을 살아가며 필요에 의해 형성된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 약속의 형태는 시대를 거치며 필요하면 수정하거나 없애면서 지금까지 이어진다. 사람들은 그 약속이 어떤 형태로 변해왔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을 형성하는 것은 이 시대의 것들만이 아니다. 현재는 언제나 이전 시대와 이어져 있다.
정보를 전하는 매체 자체의 변천 과정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변해온 발자취를 현대에서 그때 그 방식 그대로 재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이번에 방문한 '목판서화관'은 우리나라의 전통 인쇄 문화인 목판 인쇄물을 전시하고 목판 인쇄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이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문화유산인 목판 인쇄를 간편하게 결과물만 만들어 보여줄 수도 있지만 조상들이 전통적으로 해 온 방식을 재연하여 완판본을 복원·전시하는 드문 곳이다.
형태를 보존하는 것도 수고가 들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복원하여 만든 문화유산은 그 과정만으로도 우리 조상들의 얼이 느껴진다.
전통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궁금할 법한 목판서화관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목판서화관은 2008년 전주시 유명문화예술인 정주(定住) 지원사업으로 이산 안준영 관장을 모셔오면서 시작된 공간이라고 한다. 이 공간이 한옥마을에 자리한 이유는 전주가 한국의 최고 문화도시로 불릴만큼 문화 관련 활동이 활성화 되었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홍보하기 좋은 장소여서라고 한다.
목판서화관이 목각판을 복원하고 시민을 대상으로 전통판각강좌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것이 현재에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 여쭤보았다. 이산 안준영 관장이 운영 중인 '대장경문화학교'는 목판 복원을 통한 제작 과정과 책을 만들어내는 고인쇄 출판에 관련된 복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서 세계로 그 기능과 역사를 홍보하고 있다고 하셨다. 또한 전주 시민들에게 판각 강좌를 교육하여 지역의 완판본 문화를 이해하고 지역민으로 자긍심을 갖게 하고 있다.
더불어 목판서화관은 앞으로도 완판본과 관련된 목판 복원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이며 결과물만 전통적인 형태적 복원이 아니라 전통 방식을 중심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취재를 하며 목판본 강의가 진행된다는 장소로 향했다. 그 곳에는 열심히 판각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판각 강좌를 알게 된 계기로는 지인과 인터넷을 통한 유입이 많았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도구부터 수제로 제작하면서 판각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판각을 해보며 조상들이 남긴 피땀 어린 노력의 흔적을 알아보게 되었다고 말하시며, 우리 고인쇄 문화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전통판각강좌는 단순하게 판각 방법만을 강의하지 않는다. 강좌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불문하고 우리나라의 전통 인쇄 문화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기에 완판본에 관련된 강의를 동시 진행한다. 실제로 이 강의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되어 복원 사업에 참여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재는 과거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위에 있다. 완판본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다양한 문화유산의 복원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이산 안준영 관장은 혼자 복원 사업을 수행하는 것보다, 전통 방식인 분업 방식을 선호한다.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은 우리의 현재를 이루는 근간을 되돌아본다는 뜻이다. 결과물만 보여주는 것은 과정에 담긴 우리 조상의 지혜나 얼을 알아보게 하지 못한다.
또한 전통은 언젠가 후대에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혼자서 전통을 잇고 후대에 전수하는 것은 어렵다. 전통은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기도 하고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안준영 관장은 고인쇄 과정에 담긴 조상의 얼을 소중히 여김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과 그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의 소중함을 가르치려 하는지도 모른다.
안준영 관장은 목판서화관으로 오시기 전부터 고인쇄에 관심을 가지고 계속 활동해왔다. 그 연으로 유럽인쇄박물관협회에 가입하여, 그들과 교류하고 있다고 한다. 이전 교류의 일환으로 프랑스 그라블린 소묘판화박물관에서 목판 인쇄의 전시·시연·체험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유럽의 금속활자와 다른 우리나라의 목판 인쇄의 우수성에 많은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의 전통 고인쇄 방법이 신선하게 비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전통'하면 고지식한 것이고 답답하다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새롭고 신선한 방법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근대화의 영향인지 우리나라 전통 방식보다는 유럽의 전통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의식 근간을 이루는 우리나라 전통은 우리만의 것이고 세계에서 우리들의 경쟁력이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전통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화 등을 일컫는다. 대부분 옛것을 의미하지만 전통은 늘 살아있는 문화 그 자체다. 그래서 그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그리고 전수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다.
목판서화관에서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가는 판각의 기능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을 책무로 여긴다. 그러면서 목판서화관을 담당하는 대장경문화학교에서는 전통판각강좌를 통해 많은 수강생들을 배출하고 40명의 정회원을 구성하여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부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목판서화관에 처음 발을 들인 사람들도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문화이다. 그러므로 우선은 가벼운 흥미로 시작하는 건 어떨까?
전통적인 방식으로 목판을 만드는 강의가 열리는 목판서화관에 가보자. 조그만 관심이 조그만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글/김효선(시민학습기자)
사진/목판서화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