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평생학습관

서브 콘텐츠

아카이브

현장스케치유쾌한 인문학: 새 길을 찾아서 -노자 <도덕경>으로 다시 읽는 동북아시아
관리자2022-03-29조회 2064
'현장스케치'는 평생학습 현장의 일을 사진과 글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유쾌한 인문학: 새 길을 찾아서

-노자 [도덕경]으로 다시 읽는 동북아시아



화요일 밤마실 

마스크 위 눈매들이 낯익다. 화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만난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인문학을 찾아온 사람들은 인사말만 건네는 서먹한 사이지만 앎에 대한 의욕으로 우정이 싹튼다. 후드 티로 맵시 있게 모양낸 청소년부터 신선 같은 풍모의 은발 노인까지 배움으로 유쾌하게 하나 되는 밤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전주시평생학습관에서는 매년 인문학 제1탄으로 봄맞이를 시작하여 인문학 제4탄으로 한 해를 마감한다. 미리 보는 1년 치 강좌 안내는 제목만으로도 지적 허세를 부릴만하다. 대충 아는 것을 전부 아는 것으로 퉁 치며 살다 보면 어느샌가 작심하고 들여다볼 기회를 찾게 된다. 인문학 강좌는 사람들의 솟구치는 지적 욕망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곳이다.

일주일 내내 음식, 차, 옷, 집 등 갖고 싶은 소비 갈증으로 몸살을 앓다가도 화요일 밤이면 책, 경서, 고전, 그림 등 알고 싶은 지적 갈증에 우아하게 유쾌하다.

이미지

새 길, 새 힘 
2022년 인문학 제1탄은 노자 [도덕경]으로 다시 읽는 동북아시아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다. 한국, 중국, 일본이 속해있는 동북아시아를 노자의 관점으로 살피면 어떻게 될까. 궁금증이 앞선다.

노자가 살았던 시대가 주나라 말기라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때였다니, 뭔가 혜안이 있을 듯하다. 어른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른들이 꼰대라고 불릴까 봐 몸 사리는 세상은 올바른가? 사랑으로 자식을 품으라 했건만 게임에 빠진 아들을 공부에 빠지도록 용쓰는 엄마는 세상 물정 모르는 건가? 식당에 가지 않고도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편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쌓여가는 플라스틱 쓰레기 걱정으로 너스레를 떠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건가?

노자가 말하는 ‘도(道)’는 ‘새 길’로 풀이될 수 있다고 강사는 힘주어 말한다. ‘새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반가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어로는 ‘way’나 ‘course’로 번역된다 하니 ‘도(道)’는 ‘길(路)’이라는 뜻 외에도 ‘방법’이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또 ‘도(道)’는 간혹 동사로 쓰일 때도 있는데 이때는 ‘인도하다’, ‘안내하다’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희망이 보인다. 노자를 통해 ‘새 길’을 찾고 ‘새 방법’을 찾으면 혼란스런 가치관에 시달리는 내 삶도 ‘새 삶’으로 안내되지 않을까.

‘덕(德)’은 ‘도(道)’의 짝이라고 한다. ‘덕(德)’은 뭔가를 얻는 ‘득(得)’과 같아 그것이 내 안에 쌓이면 ‘힘’이 된다는 설명이다. 내가 컴퓨터를 상당 시간 다루면 내 안에는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힘, 즉 ‘덕(德)’이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컴퓨터를 더 많이 쓰다 보면 혐한을 부추기는 중국과 일본 네티즌에게 힘 있는 한 방을 날릴 수 있다는 거구나. 노자의 ‘도’와 ‘덕’을 깨우치다 보니 용기가 생긴다. 이제 웹툰에 도전해볼까? 문득 부드러운 한 방을 만들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이미지

도가도 비상도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 즉 ‘길을 길이라 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라니!’ 모를 것도 같고 알 것도 같다. ‘늘 그러한 것’, ‘항상 그대로인 것’, ‘지속 가능한 것’은 없나보다.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는 지구가 늘 그런 평상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돌발상황의 형국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코와 입을 가리는 마스크가 일상이 된 비상도(非常道)의 시대에 살고 있다. 노자의 ‘비상도(非常道)’가 묵직하게 머리를 울린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살았던 노자가 현대의 첨단 기술 문명을 압도하는 것 같다.

2021년 어느 날, 눈떠보니 한국은 선진국이 되어 있었다. UNCTAD는 공식적으로 한국의 지위를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시켰다. 이 지위는 2026년까지 유지될 전망이라고 한다. 한국은 늘 중국과 일본의 힘에 눌려 살았었는데 이제 달라질 모양이다. ‘늘 그런 것’은 없다는 노자가 반갑고 또 반갑다.

글쓴이 : 장미영(유쾌한인문학 수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