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낭독은 말하듯이
관리자2022-11-24조회 987
'현장스케치'는 평생학습 현장의 일을 사진과 글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가을이 소란한 것은 저마다 열매를 가지기 때문이다. 땀 흘려 가꾼 열매를 맛보는 결실의 계절에 농부가 된 기분이다. 내 인생에서 여름보다 더 뜨겁게 보낸 가을이 있었던가. 나는 울퉁불퉁 모과가 아닐까. 낭독을 만나 가슴이 벅차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녹음을 앞둔 나는 하늘을 나는 새처럼 활기차다. 인생 후반기 첫 도전이 아름다운 이유다.
낭독은 생소한 장르다. 내 목소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낯설지만 가슴이 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첫 수업에서 내 감상은 와르르 무너졌다.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지도를 해주신 아나운서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과정을 잘 마칠 수 있었을까. 전적으로 지도자가 중요하다.긴장감에 오독이 계속되면 자괴감에 빠진다. 꼬이는 발음은 그 다음이다. 부끄러움을 이겨내는 일이 전부였다. 피드백은 정확하고 다정했다. 그런 선생님의 모두를 닮고 싶었다. 지적사항을 바로 고치며 연습하니 재미가 붙었다. 수업이 중반에 이르러 ‘말하듯이’가 뭔지 알 것 같았다. 낭독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듯이 생각을 넣어 목소리로 표현해야 한다. 적어도 30번은 연습하고 녹음하자고 말씀하셨다.
낭독 3기는 15명의 목소리로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아몬드’를 읽는다. 분량은 20분 정도로 톤에 맞게 순서를 정했다. 합창은 하모니가 생명이라면 이번 낭독은 지루할 틈이 없는 개성의 조합이다. 일반적인 오디오북과 다른 점이다. 중년의 아마추어 봉사자들이 빚어낸 원석에 가까운 작품을 듣는 시각장애인들의 생각은 어떨지. 아직 녹음 전의 소감이지만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감동이 있다. 오디오북을 제작해 점자도서관에 기증한다는 취지가 좋아 시작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배움과 우정을 나누고 싶어서 지원을 했다.
전주시의 평생교육은 커뮤니티 활동으로 이어진다. 반가운 일이다. 50세 이후 내 삶을 고민하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지금 이대로 살아도 좋은가? 후반기 인생은 혼자보다 함께 사는 것에 남은 열정을 쏟고 싶었다. 그동안 많은 강의를 듣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다. 교육과정에서 만난 분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배움을 나누고 살아간다면 이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공동의 목표가 있으면 50플러스 세대들이 친구가 될 수 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세대 공감은 중요한 논제가 되기도 하니까. 학습커뮤니티에 대한 짧은 소견이다. 낭독을 하면서 내 목소리의 색이 어두운 걸 알았다. 차분하지만 지루함을 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웃는 얼굴로 책을 읽는 연습을 피나게 한다. 모과가 못생겼어도 향은 일품이지 않은가. 탁한 목소리에도 은은한 향을 내드리고 싶어 좀 거창한 표현이지만,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남은 녹음작업에 임하겠다. 인생학교 낭독반 친구들께 경의를 표한다. 하모니카 연주로 눈물겨운 감동을 주신 두 분의 고매한 모습을, 혼신의 힘을 다해 낭독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결석으로 끝까지 노력한 자신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나의 도전은 계속된다.
글쓴이
이영진(50+어른학교 낭독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