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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교육] 유쾌한 인문학
관리자 2012-02-02 조회 4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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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인문학 열풍을 기대하며

 언젠가 사소한 일로 안 사람과 냉전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이인지라 부부끼리는 좋은 기억도 많지만 서운한 마음이 더 많다고들 합니다. 이제는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아무런 기억도 안 나지만 너무 쉽게 해소되었던 점만은 또렷합니다.
문제해결은 별것도 아닙니다. 우연히 틀었던 TV 드라마 한 편이 모든 문제를 종결시켰습니다. 잠시 다른 사람들 삶의 이야기에 빠져 들다보니 우리들의 상황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처럼 너무도 공포스런 상황 앞에 영화감독들이 아무 소리없는 영상만 보여줌으로써 더 큰 효과를 자아내듯이 말입니다. 저렇게 큰 문제에 직면한 사람도 있고, 그러면서도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여유롭게 풀어나가는 모습들이 잠시 우리의 상황을 잊게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는 반전의 효과마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술 한잔 마시면서 오랜만에 잊고 지낸 알콩달콩 사소한일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우리가 흔히 듣는 인문학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양한 인문학 강좌는 눈 앞의 당면한 일에 우선 당장 도움을 주지는 못할 지라도 삶의 깊이와 의미를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사람관계와 별 것도 아닌 일에 매일처럼 스트레스 받아가며 살아가는 우리네삶을 통체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안돼 이 인간아!’ 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면서도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점차 작아져만 가는 자신의 모습이 싫으면서도 뾰쪽한 대안이 없기에 묵묵히 견디면서 한소리하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잘났어 정말~’. 그렇다고 묵묵히 주저앉기에는우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에 자신의 삶을 채워줄 무엇인가를 찾고 그 속에서 힘을 얻기도 합니다.

종교적 믿음, 봉사하는 삶, 취미생활 등등. 그러한 정신적 회복을 포괄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삶과 지혜를 통찰하는 인문학입니다. 다양한 인문적 지혜는 우리 삶을 보다 여유롭게 해주고 인간 이해의 지평을 넓혀주기도 합니다. 저렇게 살아가던 사람들도 있었고, 그러한 사람들의 노력이 우리의 문화와 역사 속에 녹아내려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오늘날의 문제로까지 이어져왔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이는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갈수록 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들이 이곳 저곳에서 인기를 얻기도 합니다. 전쟁터 같은 경영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분주한 그들이지만, 대부분의 경영기법들의 한계를 절감하기에 새로운 돌파구로 인문학에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핵심역량을 키우고, 조직의 힘을 한데 모으고, 고객의 마음을 사로 잡는 등의 다양한 방법들을 적용하지만 보다 큰 밑그림을 그리는데 부족한 무엇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영, 소비자와 종업원의 인격을 존중하는 기업, 윤리경영 등 새로운 경영의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인문학의 힘은 발휘됩니다. 구체적 실무보다는 인문학 지식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즉 최고경영자들은 ‘인간 이해를 통한 상상력의 극대화’를 경영에 적용하여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입니다.([CEO인문학] 참고) 인문학은 이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한 발 멀리 떠나있는 듯 하면서도 어쩌면 갑갑한 현실문제를 해결해주는 또다른 열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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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는 여타 지역처럼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많은 강좌들이 있고, 특히 인문학에 대한 수준높은 관심도가 있는 곳입니다. 전주시 평생학습센터에서 진행해왔던 다양한 강좌들 가운데 ‘유쾌한 인문학’은 전주시민의 문화적 관심을 잘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진행해왔던 강좌들의 주제들을 얼핏 보기만 해도 일반대학의 교양학부를 넘어설 정도입니다.

신화, 길(실크로드), 음식, 농경등의 코드를 통해 문명의 전개사를 재조명하고, 대중문화나 미술사(회화사)처럼 문화적 눈높이를 키우는데 도움을받을 수 있는 강좌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고전읽기나 동양철학처럼 정신적 깊이를 더해주는 강좌도 개설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강좌가 한 기관에서 몇 년에 걸쳐 2개월 단위로 진행되었다는 점은 강좌진행 담당자의 보이지 않는 헌신적 노력과 열정이 뒷받침되어 가능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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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러한 강좌개설에 참여하는 전주시민들의 높은 문화욕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그 중 한 강좌를 진행했던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동일한 강좌를 서울에서 개설했다면 수강인원이 반절도 안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고리타분하게 보일지라도 무엇인가 그 속에서 느껴보고 공감하려는 전주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다는 말을 애둘러 말한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모든 물산들이 모인다는 서울 남대문시장에는 쥐똥도 갔다 놓으면 팔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떠한 강좌가 개설되든지 무산되지 않고 성황을 이루었다는 점은 이곳 전주이기에 가능한 문화적 현상입니다. 남들도 부러워하는 이런 전주가 자랑스럽고 새로운 힘으로 솟구칠 기반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그 중 동헌에서 진행되었던 우리의 전통사상에 대한강좌들도 주목할 만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에 걸맞는 내실화의 본격적인 추진이 한옥마을의 한 쪽에서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에 걸맞는 한옥건물의 외형적 복원이 아니라 가장 ‘정통’의 모습을 전주에서 찾아보려는 전주시의 각별한 노력이 일궈낸 성과이기도 합니다.

외형적 모습은 경제적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복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잊어버리다 완전히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우리네 전통을 확인한다는 것은 지금이 아니면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정통의 겉모습과 더불어 그 속에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노력은 그동안 지역의 인문학을 선도해왔던 전주시 평생학습센터의 오랜 노하우가 곁들여졌기에 가능한일이기도 합니다.

동헌에서 진행한 ‘한국의 선비를 만나다’에서는 우리의 가까운 과거였던 조선시대 대표적 유학자 8인의 삶과 정신세계를 조망하였다. 국사책에서 달달 외워 비교적 익숙한 이름들이지만, 실제로 그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았고 후손들에게 남겨준 지적 자산이 무엇인지는 전공자 이외에는 잘 알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한국의 선비를 만나려는 노력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종적 접근이라면, 같이 진행된 ‘전북의 선비를 만나다’는 우리가 사는 바로 이 곳의 선비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횡적 접근으로 보입니다. 시공(時空)이 만나는 접점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한국적이자 전주다운 멋을 찾는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려는 시도, 특히 그동안 연구가 축적되지 않는 전북의 선비들을 조망하려는 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한 감이 있습니다. 우리 내부에서 조차도 관심이 부족한 학자들에 대해 다른 곳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한다는 자체가 무리였을 것입니다. 서울까지 찾아가기는 쉬워도 인사동 찾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또한 쉽게 전달하려는 강사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구호같은 이기심성 등 당시의 용어를 해독하는데 여전히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똑같이 민주와 민생을 말하더라도 각 정당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양파껍질 벗기듯 그 내면을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그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다양한 현실대처 방안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학계의 연구자들 내부에서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한번에 모든 것을 만족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양철학, 특히 우리 전북의 사상과 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는 전주시민들의 지적 욕구를 감안한다면 좀 더 개선된 강좌개설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러저러한 학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알기 보다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의 활약과 염원을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같은 인물과 내용일지라도 그 시대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염두에 둔 접근이 필요하고 이해의 지평을 달리하는 접근방법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문제로 다가설 수 있도록 강좌이후 별도의 토론의 장도 충분히 활성화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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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있어서 찾기 보다는 미리부터 관심을 갖고 차근차근 접하다보면 우리의 눈높이도 그만큼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유쾌한 인문학이나 동헌 강좌 등에서 동양학의 기반이 되는 ‘고전읽기’에 주목하는 점은 적절한 접근이라고 봅니다.

물론 과거 동아시아 공통 분모로서 한자로 써 있는 책들이 주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물러서기보다는 정면승부하는 것이 오히려 얻어가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회를 좋아하다보면 푸짐하게 주는 횟집도 마음에 들지만 신선하고 맛깔스런 차림으로 나오는 일식집에 눈이 가기도 합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까운 바닷가 근처라도 가서 팔팔뛰는 횟감을 맛보고 싶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알면 알수록 가공되지 않는 원래의 모습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그만큼 지적 욕구를 채워가는 지름길입니다. 전달자의 훌륭함도 필요하지만 고전읽기를 통한 동양학의 진면목을 직접 맛보는 기회가 보다 확대되기를 기대합니다.

인문학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보이지 않는 점 때문에 우리네 일상에 거리감을 두면서 보다 활력소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루를 여행하려면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를 생각하지만, 한 달이나 그 이상을 여행하려는 사람은 치밀한 계획 속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리저리 닥칠 어려움을 미리 생각하는 통찰력과 안목을 키워나가야 당황스러운 상황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언제나 직면한 우리들에게 폭넓은 인문적 소양은 많은 위로와 힘이 될 것입니다. 전주시 평생학습센터에서 주관하는 인문학을 통한 시민들과의 소통노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겠지만, 그 원동력은 우리 모두의 적극적 관심에서 비롯될 것입니다.배움을 넘어 즐김의 차원으로까지 이어지는 인문학이 우리 고향 전주에서부터 싹트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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